금상진 기자 |
때는 2002년 11월이었다. 해체 위기의 대전시티즌을 살리기 위한 서명운동 선포식이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에서 열렸다. 대전시티즌 서포터즈 퍼플크루를 비롯해 대전시민 수 백여 명이 100만인 서명을 목표로 서명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대전시티즌은 대주주였던 계룡건설이 구단 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창단 6년 만에 해체위기에 직면했다. 2002월드컵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내 10번째 프로구단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주도적으로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시티즌 살리기에 주도적으로 나선 이들은 축구계 인사들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메가폰을 들고 응원가를 부르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서명을 호소했던 이들은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11월 말의 쌀쌀한 날씨에 교복 위로 얇은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은 시내 곳곳을 동분서주하며 시민들에게 시티즌의 상황을 알렸다. 서명운동은 대전역 광장과 둔산동 중심가, 계룡산 입구,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도 진행됐다. 온라인 서명운동도 병행됐다. 당시만 해도 이메일이 유일한 온라인 통신수단이었지만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주도해 1만2000명의 온라인 서명운동을 받아냈다.
시민들의 서명운동은 결국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지역 언론사들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중앙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역 축구동호회 등 체육계의 동참도 줄을 이었다.
시민들의 열기가 예상외로 퍼지자 결국 대전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연이은 압박(?)에 대전시가 시티즌에 재정지원을 하기로 했다. 해체 위기에 직면했던 대전시티즌이 시민의 힘으로 급한 불을 끄게 된 것이다. 이듬해 대전시티즌은 유니폼에 '계룡건설' 대신 '대전사랑'이라는 새로운 스폰서의 이름을 달고 K리그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홈 개막전부터 연전연승을 거두며 K리그 정상권의 팀들을 제압했고 매 경기 2만 명이 넘는 구름 관중을 동원했다. 해체 위기를 맞이했던 꼴찌 팀이 불과 1년 만에 리그 중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6년 전 대전시티즌 살리기에 앞장섰던 어린 학생들은 어느새 30대 중반의 가장과 아이 엄마가 됐다. 기자 역시 그 일원들과 함께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아산무궁화를 사태를 보는 심경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진다. 구단 회생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아산무궁화에 16년 전, 대전시민들에게 일어났던 작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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