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이렇게 썰렁한 날이면 떠오르는 친구, 아마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면서 따뜻한 돌봄을 받은 것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나보다. 바로 전화를 했다. 요즈음 새롭게 깨달은 것 중 하나인데 누군가 생각이 나면 바로 연락하는 게 좋다. 그래야 후회가 적다. 아니나 다를까,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응답을 한 친구는 해외봉사를 가기 위해 연수중이라고 하였다.
그러고보니 친구는 벌써 오래 전부터 해외 자원봉사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몇 해 전 시니어 자원봉사자 모집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하기에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아, 결국 그 의지를 꺾지 않고 기어이 봉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친구가 한편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 걱정도 되었다. 시니어 자원봉사자 지원에 떨어진 이유를 내 나름대로는 건강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고 마른 체격의 친구가 저개발국가 낯선 땅에 가서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면접관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몇주간의 연수를 마치고 나온 친구를 만났다. 봉사 갈 곳은 캄보디아로 보건분야 간호업무를 도우러 가는 것이라 하였다. 현지어 수업시간에 작명해주었다는 친구의 새로운 이름은 '짠'이란다. 어떻게 쓰냐고 묻자 부적 속의 글자 같은 크메르 문자를 보여주며 뜻은 달(moon)이라고 하였다. 간호사를 어떻게 부르냐니까 '끼리인눕밧타예까' 란다.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크메르왕국의 유적을 둘러보느라 다녀왔던 대엿새 캄보디아 여행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낯설음이 밀려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40년을 간호사로, 보건교사로 쉬임없이 일했는데도 새로운 역할 앞에서 친구는 셀렘과 동시에 긴장을 느끼는가 보다. 병원 실무에서 떠난지 오래 되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러워 하는 그녀에게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캄보디아 이름이 '짠'이니까 새로운 세상이 '짜안~' 열리지 않겠느냐고 우스갯소리를 보탰다.
잘 모르긴 해도 부임지가 수도권에 있는 병원이니까 이미 그들 수준의 간호가 이루어지고 있을테고, 그 간호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봉사자로 가는 것이니 앞장 서는 게 아니고 뒤에서 받쳐주고 밀어주는 역할 아니겠는가. 하다가 부족함이 느껴지면 그동안 엮어놓은 네트웍을 통해 지원을 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발도상국가들과 상호교류를 통해 국제협력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해외 여러나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관에 속해 있으니 그 체계 안에서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친구를 격려하다보니 필자의 걱정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여하간 친구의 삶에서 1막이 내려지고, 새로운 장이 펼쳐짐을 느낄 수 있었다. 짠 선생의 2막 1장은 오롯이 친구의 선택이다.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점수를 따기 위한 봉사도 아니고, 이력서에 그럴듯하게 넣을 스펙으로서의 봉사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야 말로 온전한 진정성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쏟아 볼 기회를 선택한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이니 어려움도 적지 않겠지만 그 또한 이겨내는 성취감이 있을 것이고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얻는 배움 또한 크리라 기대한다.
봉사를 떠나는 친구 이야기를 하다보니 국내 곳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새삼스럽다. 배고픈 이웃을 챙겨주는 분들,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우나 노인들을 도와주는 분들, 특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내지 않고 오래도록 봉사하는 분들의 마음에 그들이 베푼 것 이상으로 따뜻함이 채워지는 아름다운 겨울이면 좋겠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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