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바를 획득하기 위해 부지런히 애 쓰는 것을 노력이라 하지요. 사물이 스스로를 계속 높이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그 노력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법합니다. 무조건 달린다고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중 하나, 매듭을 지으며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매듭이 없으면 발전이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 매듭은 묵화에 찍은 점이라 생각합니다. 점이 있어야 생동감이 있습니다. 점, 선, 여백이 조화를 이룬 묵화를 다시 보세요. 점이 없으면 생동감이 사라집니다. 뿐인가요? 길고 긴 대나무에 마디가 없으면 바람에 쉬이 꺾입니다. 강도를 높여 주지요. 휘지 않고 바로 서게도 해줍니다. 그 마디가 쌓여 높이가 됩니다.
매듭을 일로 치면 마무리라 하겠지요. 마무리가 없으면 새로운 시작에 장해가 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새 생명을 잉태하지 못합니다. 농사일을 중간에 방치하면 더 큰 수확을 기대할 수 없지요. 화룡점정(畵龍點睛)이요, 불가에서 상징물에 가하는 점안(點眼)입니다. 마무리를 통하여 비로소 가치가 부여되고 새로운 시작의 토대가 됩니다.
벼농사에 견주어 볼까요? 벼가 익으면 낫으로 베어 논바닥에서 건조 시킵니다. 고루 잘 마르도록 뒤집어 주기도 하였지요. 뒤집는 것도 대단히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비라도 오려는 기미가 보이면 마르기전에 묶은 볏단을 세워 두기도 하였습니다. 마른 다음, 집 마당이나 마을 공터로 옮기지요. 예전엔 농지정리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우마차가 다니지 못하는 농로나 논바닥은 지게로 날랐지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벼이삭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농작물을 거두고 나서 논밭에 떨어진 곡식을 줍는 것을 이삭줍기라 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이삭줍기로 농사일 마무리를 했었지요. 줍지 않으면 이삭은 그냥 흙으로 돌아갑니다. 조금 살기가 나아지니 일반인은 이삭줍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집단으로 이삭줍기한 기억이 납니다. 거둔 수확은 어려운 이웃돕기에 사용하였던 같아요.
늦여름이나 초가을, 고구마 이삭줍기 하였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을에는 인삼 이삭줍기 해본 경험담을 더러 듣게 됩니다. 대부분 재미 삼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진지한 경우도 있더군요.
벼농사도 마찬가지지만 일하는 방법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모든 면에서, 땅속 곡물을 호미나 곡괭이, 쇠스랑으로 수확하던 때와 비교가 되지 않지요. 인삼 캐기를 볼까요? 채굴기를 단 트랙터가 지나고 나면 흙이 모두 털어져, 실뿌리도 다치지 않은 채 인삼이 알몸을 들어냅니다. 그냥 주우면 되지요. 트랙터를 두세 번 돌린다 하더군요. 선별 작업해서 상자에 넣는 것으로 추수가 끝납니다. 일이 많이 줄었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 다음에 이삭줍기를 하지요. 이삭 양이 많지 않은가 봅니다. 허드렛일을 도와주면, 주인이 상품화가 어려운 인삼을 나누어 준다더군요.
대단치 않은 일이라도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면 힘들지요. 팔, 다리, 허리, 모두가 몹시 아프게 됩니다. 아픈 크기만큼, 땀 흘린 다음의 즐거움, 수확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되지요. 허위나 과장이 아닌, 결실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이루어집니다. 이삭줍기는 마지막 뒷정리요, 돌아보는 일입니다. 깔끔한 갈무리가 새로운 시작의 토대가 되지요.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습니다. 끝도, 새로운 시작도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맺음으로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유종의 미라 하지요. 반면에, 결론을 짓지 못하면 용두사미(龍頭蛇尾)라 합니다. 시작은 거창하고 끝이 미미하거나, 처음은 좋으나 끝이 좋지 않음을 말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교만하거나 가지고 있는 힘을 오남용 해도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합니다. 쾌락을 쫓아도 그리 되지요. 마무리가 없어도 같은 결과가 됩니다. 그나마 돌아보지 않으면 건질게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과 용기, 열정이 반감되거나 상실하게 됩니다.
세밑입니다. 한 해 동안 거둔 수확보다 이삭줍기가 더 큰 것은 아닐까합니다. 남은 알곡 알뜰히 거두시고, 새해 고운 꿈 많이많이 준비하기 바랍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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