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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눈앞의 가파른 비탈길만 바라보며 걸을 때도 있지만, 그러다가도 뒤로 빙글 돌거나 잠시 멈추면 세 방향으로 펼쳐진 광활함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전진할 때 당신의 등을 덮고 있던 무한한 공기의 망토를 볼 수 있다. 해발 3900미터쯤 오르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그다지 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 없는 산 정상이 아니라 산등성이다. 휘트니산은 긴 산등성이 중 가장 높은 지점일 뿐이다. 능선에 발을 올리는 순간, 눈앞에서 갑자기 서쪽 세상이 펼쳐진다. 동쪽보다도 더 멀고 더 야생적인 광활한 영역이 놀라움으로, 선물처럼, 계시처럼 펼쳐진다. 세상이 갑자기 두 배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볼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본문에서
'나'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내가 그걸 '나'라고 인식하는가. 나라는 확신을 하기 전까지 나는 나를 모르는 상태다. 모르는 나를 만나고 알게 되는,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여러 번 길을 잃는다. 그것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익숙한 장소를 떠나가는 경험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상실하는 일일 수도 있고, 파괴적이고 야성적인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이 되는 시기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이 변화는 언제나 아름답고 순조롭게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고통을 동반하고, 때로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솔닛은 '길을 잃은'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예술 작품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자연 속에서 길어 올림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나'로 변신해왔는지,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보편적인 여정을 이끌어 내는 과정은 에세이라는 장르가 지닌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곳 저곳을 빙글빙글 돌아 날아오르는 표지 속 나비처럼, 길을 잃는 법을 알려주는 안내서가 되어 마음껏 '나'를 찾아보게 할 책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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