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눈이 푹푹 나리는 날 나는 나타샤를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 못하고 소주만 마신다. 가난한 나는 사랑한다고 차마 말 못해서 슬프다. 그런 내 맘을 아는 나타샤는 나에게로 왔다. 나타샤는 오늘 밤 눈이 푹푹 나리는데 속삭인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사랑하고 아름다운 나타샤도 나를 사랑한다. 흰 눈을 닮은 당나귀도 좋아서 응앙응앙 운다.
일제 강점기 불세출의 모던보이 백석. 시대의 불운은 시인에게 행복이다. 예술의 아이러니 아닐까. 숱많은 곱슬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교복 깃을 바짝 올린 시인의 강열한 눈매가 매력적이다. 시대의 불운은 그의 운명에 가혹했다. 시인에게 시를 쓰지 말라니. 죽기 전 30여년 동안 강제수용소에서 가축을 길렀다고 한다.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손발이 잘리는 듯한 고통을 부여한다. 이 겨울 눈이 푹푹 나리는 날 백석을 기다려야겠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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