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그동안 우린 함께 있어도 경계의 날을 세우지 않고 바람처럼 물처럼 서로에게 무심한 듯 살아왔지요. 어쩌면 아내에게 그림은 오롯이 외로움과 그리움을 찾는 작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화려함도 강렬함도 내 것으로 삼기에는 마음에 두지 못해 내면의 사유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수묵을 찾았고 펼쳐놓고 보니 허허로운 물과 하늘 잔잔한 수초들이 저를 많이 닮았네요. 그러나 생각처럼 다 담아내지 못해 아쉽고 부족하지만 이 그림들이 누군가에게 평안과 안식의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라는 아내의 고백에 왠지 마음이 짠하였습니다.
예술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고단한 일인지요. 그러나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일이라면 늘 자신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창조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의 문을 열고 태어나 매순간 선택하고 열어가야 할 문들을 수도 없이 만나지요. 누구를 만나는 일부터 시간과 공간을 두고 어떤 일을 결정하는 사소함까지 문을 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문을 여느냐 열지 않느냐는 자유 선택이지만 반드시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 그래서 무엇보다 신중함을 필요로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그 안을 훤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세상의 문은 반드시 그렇지 않지요. 창문도 비상통로도 없는 그 문에는 비밀번호가 없습니다.
그 방에서 아내는 대청호의 물과 바람과 햇살 그리고 눈이 만들어낸 사계로 밤을 꼬박 새우면서 1000호나 되는 경치를 빚었습니다. 찬란한 마음으로 아내의 그림이 수묵화의 경지를 벗어나 진경산수의 자연을 닮았으면 합니다. 소소한 아름다움이면 어떻습니까. 행복이란 여러 번의 웃음으로 채워지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이란 운명과 숙명이 리버럴하는 교집합입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다시 불계공졸을 생각합니다. 불계공졸이란 어떤 일이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추사 선생의 예술경지를 이르는 말이지요. 작가들이 설익은 자신의 작품을 내보인다는 것이 그리 유쾌할 리야 없지만 스스로 그린 그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내는 전시 기간 내내 행복한 것 같습니다. 한 번도 아내가 유명한 작가가 되기를 바란 적도 없지만 아내의 수고로움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2018년은 아내에게 잊혀지지 않을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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