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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퍼붓는 해 어스름,
떠돌이 娼女詩人(창녀시인) 黃眞伊(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
邊山(변산) 格浦(격포)로나 한번 와 보게.
자네는 불가불
水墨(수묵)으로 쓴 詩(시)줄이라야겠지.
바다의 짠 소금물결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어
벼락 우는 소나기도 맞아야 하는
자네는 아무래도 굵직한 먹글씨로 쓴
詩(시)줄이라야겠지.
그렇지만 자네 流浪(유랑)의 길가에서 만난
邪戀(사련) 남녀의 두어 쌍,
또 그런 素質(소질)의 손톱의 반달 좋은 처녀 하나쯤을
붉은 채송화떼 데불듯 거느리고 와
이 雷聲(뇌성) 驟雨(취우)의 바다에 흩뿌리는 것은
더욱 좋겠네.
한줄 굵직한 水墨(수묵)글씨의 詩(시)줄이라야 한다는 것을
짓니기어져 짓니기어져 사람들은 결국
소나기 오는 바다에
이 세상의 모든 채송화들에게
예행연습 시켜야지.
그런 龍墨(용묵) 냄새 나는 든든한 웃음소리가
제 배 창자에서
터져 나오게 해 주어야지.
부안 내소사에 간 적이 있다. 전나무길을 따라 만난 내소사의 봄은 한없이 잠이 쏟아졌다. 내소사 대웅전 기둥에 기대어 따사로운 햇살에 취해 잠결에 빠졌다. 감긴 눈이 천근만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대웅전 문의 꽃문양이 참 아름다워 졸린 눈을 비비며 감탄했었다. 여느 사찰처럼 단청을 바르지 않아 자연스럽고 소박하고 고풍스러웠다. 무늬가 어찌나 섬세하고 예쁜 지 마음에 둔 사람을 데려와 보여주고 싶었다.
부안에 격포가 있다길래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안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왔다. '떠돌이 창녀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 변산 격포'로 가야겠다. 아름답고 영특한 황진이의 슬픈 사랑같은 사랑을 꿈꾼다. 예정되지 않은 삶은 얼마나 가혹하고 매력적인가. 행여 질펀한 갯펄에서, 인적 없는 쓸쓸한 바닷가에서 잠시 멈추는 것도 좋은 것을. 사련 깊은 사랑의 구경꾼이라도 좋겠지.
권력의 아첨꾼으로 생을 마감한 서정주의 재능이 여기서도 엿보인다. 서정주의 빛나는 시를 접할 때마다 안타깝고 슬프다. 무엇이 모자라 군부독재에 빌붙어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했을까. 예술은 작가의 삶과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삶의 궤적은 영원히 불도장처럼 따라 붙을 것이다. 시인의 양심을 저버린 서정주.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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