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국가부도 그 후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국가부도 그 후

  • 승인 2018-12-05 10:03
  • 신문게재 2018-12-06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양극화
'국가부도의 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팝콘 씹어먹는 소리도, 음료수 홀짝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들리는 건 한숨과 탄식 뿐. 관객들은 2시간 동안 숨 죽이고 스크린에 집중했다. 조조영화인데도 객석이 거의 찼다.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대 청년들도 많이 보였다. 그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IMF라는 걸 알기나 할까. IMF를 겪은 세대는 1997년 12월을 잊을 수 없다. 눈 번히 뜨고 나라가 망한 걸 봤으니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경술국치에 버금가는 충격이었다. IMF 관리체제라는 생소한 상황은 한국사회 전반을 흔드는 엄청난 사회·경제적 파장을 몰고 왔다. IMF 사태는 한마디로 경제적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부도난 후 그 영향은 곳곳에서 빠르게 확인됐다.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IMF 전과 후로 나뉘는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회사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제일은행의 '눈물의 비디오'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뒤숭숭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언론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날 직장 후배로부터 잘렸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가 멍했다. 난 그 전에 신문사를 그만둔 후라 얘기만 들었을 뿐이지만 급박했던 상황이 생생히 전해졌다. 기가 막힌 건 편집국 인원의 반이 하루아침에 해고됐는데 그 절차가 야만적이었다. 퇴근 후 밤에 전화로 급작스럽게 해고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다음날 당장 짐을 싸라는 얘기였다. 살풍경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월급을 줄여서라도 동료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일부는 복귀했지만 버림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갔다고 한다. 후배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종 악몽을 꾼다고 토로했다.

일몰 직전 노을이 질 때처럼 아름다운 장면도 없다.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는 총천연색이 담겨 있다. 찬란하게 빛나는 구름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생명을 다 하는 불덩어리.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는 태양의 장엄한 죽음을 볼 때마다 기시감이 생긴다. IMF 직전이 딱 그랬다. 바야흐로 한국은 OECD 가입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처럼 보였다. 대충 노력하면 취직할 수 있었고, 때 되면 결혼하고 자식 낳고 집장만 하며 살만했던 호시절이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언론사의 위상도 대단했다. 기자들의 긍지는 하늘을 찌를 듯 했고 격월로 보너스도 받았다. 보너스 타는 달의 월급날, 여기자들은 퇴근하면 백화점으로 몰려가 브랜드 옷도 척척 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IMF라는 괴물이 나타나 대한민국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시 봐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우리의 행복지수는 OECD 최저다. 왜 그럴까. IMF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는 한국사회에 극심한 불평등이라는 독소를 퍼트렸다. 부유한 사람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현실. 상위 1%를 위한 나라. 시장은 재벌을 위해 존재하고 생존에 필요한 최저 생계비도 없는 '송파 세모녀'들은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일찍이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백기를 들었다.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N포 세대. 고통분담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너도나도 장롱 속의 금을 내놓은 서민들에게 돌아온 건 절망과 가진 자의 냉소다. "저 영화 보니까 그 친구가 생각나네.", "지금은 좀 나아졌대요?", "아직도 어렵다는구먼." 영화를 보고 나오던 노부부가 나눈 대화다. IMF는 끝나지 않았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