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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랫동안 별거중이던 아버지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집에 찾아와 잠긴 안방 문을 열기 위해 119를 불렀다. 경찰도 함께 왔다. 방문 틈새를 메웠던 공업용 본드가 떨어져나가자 지독한 썩은 내가 순식간에 집안을 뒤덮었다. 열아홉 소년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 안 버릴 거지.' _「다른 소년」
소설가 이신조가 등단 20년을 맞아 신작 소설집 <다른 소년>을 펴냈다. 표제작 「다른 소년」에서 작가는 타인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다른 삶으로 나아가 보려는 인물의 시도를 긴장감 있게 그린다. 주인공 열여덟 살 소년은 버스에서 우연히 주운 스물한 살 대학생의 신분증을 이용해 낯선 도시를 헤맨다. 대학생의 이름으로 고시원의 방을 빌리고, 근처를 지나는 또래의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이 대학생으로 보이기를 기대한다. 엄마를 죽인 고3 소년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난생처음 와본 인천의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팔지 않는 중국집"을 보고 "그래도 되는 것"이란 당연한 진실을 깨닫는 소년은, 어쩌면 그가 박탈당한 '다른' 삶으로 나아갈 기회를 떠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아홉 편의 소설의 인물들은 살인, 지진, 방사능 유출, 이혼, 데이트 폭력, 테러, 암 등 감내하기 어려운 현실에 자주 처한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그러한 환경에서 '다른' 삶을 꿈꾸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섬세하고 정밀한 소설의 언어로 보여준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언젠가는 삶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옮겨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소설 속 삶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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