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출산율이 낮다고요. 임신 소식을 알리면 주변에서 애국자 운운을 하십니다. 무난한 대화를 위해 던져지는 상투어에 날선 반응 대신 고개를 끄덕여 줍니다. 타인의 삶을 진지하게 국가주의에 이바지하는 공익적 수단으로 여겨 그런 말을 건네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발끈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모두들 할 말이 마땅치 않을 뿐입니다.
직장으로부터 출산휴가를 받았습니다. 한편 글쓰기에는 휴가가 없습니다. 원래 글쓰기란 게 그런 것입니다. 뇌졸중으로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게 된 전신 마비 상태로도 바로 그 왼쪽 눈꺼풀을 움직여 글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의 이야기입니다. 전쟁터에서도 무수한 문학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고도 <사기>를 써냈지요. 이 사례들은 김영하 작가가 '자기해방의 글쓰기'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아우슈비츠에서도 인간은 굴하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겁니다. 극단의 한계 상황이기에 더욱요.
뱃속은 이제 고요한데, 밖은 온통 작은 생명의 울음소리로 쩌렁거립니다. 일상에 들러붙은 책임이 무겁습니다. 종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달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는 일보다는 차라리 적당히 거리를 두고 경제적 부양의 책임을 지는 편이 내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해봅니다.
임신, 출산, 육아는 흔히 말하듯 고만고만한 안정된 평균의 삶으로 진입하는 길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도시에 사는 여성이 해볼 수 있는 최대치의 거친 전투라고 표현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피 흘리고 목숨을 건다는 점에서 우선 그러합니다.
게다가 그것은 DNA의 우연한 조합에 맡겨진 미지의 타자를 향한 모험이기도 합니다. 부모를 닮기야 하겠지만 다 알 수는 없는 법,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모른다는 건 꽤나 두려운 일입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에로스가 감추어진 것을 찾으려는 몸짓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추어진 것의 발견은 아이의 출산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고 합니다. 성적 관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할 기회를 얻고, 감추어진 미래를 아이로부터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비혼, 비출산을 선언한 싱글의 삶이야말로 예측가능한 안정이자 검증된 평온입니다. 자식 없는 삶이 통제 가능한 자유라면, 자식을 낳고 사는 삶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구속입니다.
인간은 인신의 구속과 같은 한계 상황에서도 내면의 무언가를 치열하게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인간다움과 살아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자유와 해방감을 얻는 존재라고 했죠.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저도 잘 지내고 있단 얘기가 됩니다.
동그란 뺨을 가진 말랑하고 연약한 몸이 뜨거운 숨을 뱉으며 온전히 품에 안겨올 때의 온도와 소리, 가벼운 몸살처럼 날 휘감았던 부담감과 충일감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네가 데려온 시간을 사랑해.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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