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이사장 |
올해 수능은 끝났지만, 교사들도 풀기 어려울 정도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문제가 많았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만약 국어 31번처럼 난해하고 긴 제시어가 든 문제를 1교시부터 풀어야 하는 수험생이었다면 어땠을까? 괜히 안 풀리는 문제로 씨름하다가 시간이 모자라 결국은 시험을 망치지 않았을까?
마라톤 같이 긴 인생길에서 한두 번 버벅댄다고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문제는 낙담해 한번 주저앉으면 평생이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나 친지, 선생님도 안타깝겠지만, 누구보다도 속상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여러 말의 위로보다는 그냥 손을 꼭 잡고 공감해주는 것이 툭 털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게다.
대학만 들어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는 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린다. 입사 경쟁률이 보통은 몇십 대 일이니 자꾸만 떨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나라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을까? 그래도 도전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용기가 짠하면서도 대견하다. 그 용기가 좌절로 바뀌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때다.
식물들은 오히려 생육 환경이 나빠졌을 때 종족을 번식시키려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씨를 퍼트린다. 사람도 그런지 한국 전쟁 후 얼마 동안은 앞집 뒷집 할 것 없이 형제들이 예닐곱은 기본인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이 아이들이 나고 자라던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의 최빈국이었다. 미래는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라 여겨졌던 그 시절 우리네 부모들에게는 자식이 곧 미래였다. 이들은 자신은 못 배우고 헐벗어도 자식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해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나라로 성장해 살만하게 됐는데, 사람의 삶이 더 팍팍해졌다고 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젊은이도 생겨났다. 등 따습고 배불러 하는 말이 아니라 죽어라 공부해 버젓이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취업이 안 되니 결혼은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다는 것이다.
혹시 결혼했다 하더라도 애는 낳지 않겠다는 커플들도 많다. 이들은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아이 교육비를 마련하느냐고 반문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제 먹을 것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던 우리네 부모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결혼해 겁도 없이 아이를 두셋씩이나 낳는 부부를 보면 용기가 가상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인생은 30년 배우고, 30년 일하고, 30년을 덤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덤으로 얻은 삶이 대책 없이 길어진다는 데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은 너무 건강한데 어느 날 갑자기 등 떠밀려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바로 무기력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인생을 3막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후반부 2막과 4장으로 나누어 재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제 방금 1막이 끝나 잠시 커튼이 내려지고 무대를 고치는 시간이 됐다고 생각하면, 2막은 막막함보다는 설렘으로 맞을 수 있지 않을까? 1막을 알레그로(빠르게) 보냈다면 2막은 급할 것 없으니 아다지오(느리게)로 살면 되지 않을까? 몸이 안 따라줘서 천천히 걷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2막의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게다.
1막 1장에서 열심히 공부했듯이 2막 3장에서 새로운 무대에 천천히 순응해 의욕적으로 배우고, 2막 4장을 희극으로 마무리한다면 커튼콜 때 열심히 살았노라고 자위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일본에서는 100살 노인이 100m를 29초에 주파했다고 화제가 됐는데, 더욱더 놀라운 일은 그가 90살이 넘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화려함을 잊고 이처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나이를 잊은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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