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김장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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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김장하는 날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8-11-2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김장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사진=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팀
ⓒ 2013 by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어릴 때 김장하는 날은 동네잔치 날 같았습니다. 김장하는 날은 온 동네 분들이 아침 일찍부터 김장하기 위한 도구를 들고 집에 모여 함께 떠들썩하게 다 같이 모여 김장을 했습니다.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거의 모든 집에서 한 겨울을 지내기 위해 김치를 담고 담근 김치를 나누어 먹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상하게도 김장을 하는 날은 유독 날씨도 추웠고 차가운 물에 소금에 절인 배추와 무를 씻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때는 지금과 같이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대부분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기 때문에 이런 김장이 가능했습니다. 김장하기 전부터 마당에 가득 배추와 무를 쌓아 놓고 하루 전에 큰 그릇을 꺼내서 소금에 배추를 절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김장은 겨울을 나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사실 겨울 동안 먹을 것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집마다 적지 않은 양의 김장을 담곤 했습니다. 우리 집은 다섯 식구임에도 불구하고 김장은 늘 백포기 이상의 배추를 절여 김장을 했었습니다.

더위가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면 어머니는 김장 걱정을 하셨고, 김장을 위해 생활비를 줄이고 절약하여 김장비용을 마련하시곤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네 공터에는 임시 김장시장이 생기고 산더미 같이 배추와 무가 공터에 쌓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임시로 생긴 김장시장에서 구입한 배추와 무를 손수레에 산더미처럼 싣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김장거리를 옮겨 놓는 일로 김장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김장은 말 그대로 겨울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김장을 하는 것으로 그해를 마무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마당이 넓은 집은 땅을 파고 거기에 독을 묻어 김장김치를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과 김장 김치에 들어가는 부재료는 사실 정해진 것이 없고 집집마다 달라서 김장김치의 맛은 정말 천차만별이었지만, 김장김치에 담긴 정성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이 '맛있다'는 것은 공통된 것입니다. 배추와 무를 고르고 소금에 절이는 정성과 각종의 양념을 버무려 담는 김장은 소금의 농도와 절이는 시간이 적당해야 하고, 고춧가루의 매운 정도와 빛깔에 따라서 맛이 정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새우젓과 멸치젓, 까나리액젓 등등 들어가는 젓갈의 종류도 맛을 내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또한 청각, 생굴, 미나리, 무채, 밤, 잣, 당근, 파, 배 등등 들어가는 부재료의 종류 또한 집집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부재료와 어울려 익은 김장김치의 맛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배추와 무, 고춧가루, 젓갈과 각종의 부재료가 조화를 이룬 김장김치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왁자지껄하게 담는 정성과 기쁨과 손맛이 더해져서 세상에 둘도 없는 맛의 조화를 이룬 완성된 김치로 재탄생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담은 김장김치는 겨울 내내 온 가족의 가장 중요한 식량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서 찐 고구마와 함께 시원하고 짜릿한 동치미를 먹던 기억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김치 그 자체만으로도 고슬고슬한 따뜻한 쌀밥과 잘 어울리지만, 김장김치에 비지와 돼지등뼈를 넣고 끓인 비지찌개나 김치찌개, 김치 국 등 김치를 넣어 만든 음식 또한 잊을 수 없는 맛입니다.

이렇게 만든 김장김치는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우리 삶을 그대로 표현한 음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각종의 식재료가 어우러진 그리고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과 손맛이 들어간 음식이 바로 김장김치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담그는 김치는 그냥 집에서 담그는 김치이지만, 김장김치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김치이기 때문에 더 특별한 것입니다. 김장을 담그는 모든 사람들의 정성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마치 조미료처럼 들어가서 아주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마치 우리 자신의 것으로만 여길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인생의 참 맛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존중하고 함께 어울려 살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주말 집에서 김장을 했습니다. 식구들 중에서 나만 김치를 먹기 때문에 우리 집의 김장은 나만을 위한 김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아내는 매년 김장을 합니다. 아직 김치 냉장고 속에는 4년 전부터 매년 담은 김장김치가 많이 남아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을 했습니다. 올해는 하지 말자는 내 주장을 거의 무시한 채, 조금만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지난 금요일 반차를 내고 내려와 김장재료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성당에서 영세를 받은 나이 드신 대녀와 올해 영세를 받을 예비 대녀에게 김장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배추를 절이지 않고 택배로 배송 받은 절인 배추의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그냥 우리끼리 김장을 했습니다.

대녀 두 분에게 김장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번거롭게 일을 벌이느냐고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사실 아내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장이라는 것이 서로가 함께하고 나누는 것, 그래서 김장이라는 계기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더 이해하고 함께 같이 공유하는 부분을 만들고 더불어 같이 살고자 한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참석하지는 않으셨지만, 혹시 두 분이 오실 것을 대비해서 돼지고기 수육을 충분히 준비하고, 충분한 양의 고추장찌개를 끓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생활환경이 과거와는 너무나 다르게 변했습니다. 삶의 방식이나 생활하는 모습이 변함에 따라서 과거 동네잔치 같은 김장의 모습을 찾기는 사실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렵던 시절 김장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생활의 모습인 동시에 춥지만 이웃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온기를 지니기 위한 잔치였습니다. 함께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기는 삶이 바로 작은 행복의 출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주말 김장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과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아쉬움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말은 지금 현재를 나중에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도록 조금은 더 보람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함께하는 세상, 함께해서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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