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유성구청장이었던 허 시장을 처음 봤다. 부임한 지 다섯 달가량 된 젊은 구청장. 그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해진 게 오랜만에 안 쓰던 노트북을 켠 이유다. 요즘 들어 부쩍 허 시장의 철학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 나는 구청장의 젊은 시절 연애사가 궁금했고,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다. 기억에 남는 건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 중 숨을 곳이 필요했고 학교방송국에 은신하다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는 거다.
다른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띄엄띄엄 받아 적은 기록에 인터뷰이는 "80년대는 언론통제가 심각한 암울했던 시기였고 경제적 발달은 이뤘지만 정치사회는 폐쇄됐었다"는 것, "지식인들이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폭발했다"는 것, "그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취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사회와 조국을 더 많이 생각했던 시기였고 희망적 비전과 긍정적 사고를 가지려고 했다"는 것, "폐쇄적이었던 구조에 비해 사람을 사귀는 데 열심히 했고 네트워크의 힘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도왔다"는 것, "인사권은 조직을 움직이는 힘이다"라고 했다. 말미엔 "어떤 가치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지 궁금하다"며 기자단에 질문을 하기도 했다.
8년 전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위에도 적었듯, 허 시장의 철학에 대한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젊은 구청장은 과거를 젊은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던 사람이었고 사람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시장이 되고 그는 시민의 정부를 표방했고 지난 시간 말했던 철학이 묻어나는 캐치프레이즈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생각이 최근 일어나는 모습들을 보며 틀렸던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본 것인가 하는 자조감이 들 정도다.
시민의 정부를 말한 허 시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과연 시민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다. 유성구청장 시절 충청권 최초로 도입한 생활임금이 대전시장이 되고 난 뒤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걸까. 생활임금위원회가 합의한 결과를 무시하고 169원이 깎인 생활임금을 허 시장은 최종 결정했다. 최근 언론인들이 펴낸 저널에 실린 허 시장의 취임 인터뷰를 봤다.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경제를 꼽았다. 생활임금과 경제는 밀접하다. 소득주도 경제성장을 펼치는 대통령과 궤를 같이하는 시장이라면 이번과 같은 결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터뷰엔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시책으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민과 함께하는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꼽았다. 시민이 주요정책에 의견을 내고 참여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전임 시장이 진행하던 민간특례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신고리 5·6호기 방식 공론화를 도입했지만 논란 끝에 멈춰 섰고 재개 시점조차 명확하지 않다. 여러 차례 문제점이 제기됐는데도 허 시장은 일언반구 없다. 인터뷰에서 강조한 경제 살리기,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한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철학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발언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쉽게 바뀌지 않는 철학이 일련의 일을 겪으며 바뀐 것인지 따지게 될 일이 없길 바란다. 스무살 내가 바라본 그의 철학이 150만 대전시민을 대표하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길, 철학을 지키는 시민의 대표로 남길 소망해 본다.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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