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
대전시가 2007년 건립한 이응노미술관은 2012년 시출연기관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으로 행정체계를 재정비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응노 화백 생전의 국제적 성과를 재 발굴하여 연구·조사하고, 정리해서 그 결과물을 전시, 세미나, 출판 등을 통해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일은 물론 전문 아키비스트를 유족이 살고 있는 프랑스 보쉬르센에 파견하여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작품 및 자료의 목록화 사업을 진행했다. 구축된 아카이브의 자료를 기초로 해외 공공미술관들과 협업 및 교류를 통해, 한국 정치 문제로 인해 잃어버린 이응노 예술의 지난 시간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백남준의 예술은 언제, 어디서나 복제 가능한 TV 화면을 이용해 예술만이 가지는 특성으로 간주됐던 독창성과 유일성을 무너뜨렸다. 더 나아가 일방적인 화면전달이라는 TV화면의 본래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관객 참여로 작품이 완성되는 비디오 아트(Video Art)로 발전하게 된다. 전시장과 길거리에서 시도했던 그의 파격적이고 즉흥적인 퍼포먼스 작업으로 미술작품은 고정적이고 정적이라는 개념을 뒤집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새로운 디지털 매체를 미술에 차용해서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결과물로 이어지는 쌍방향 예술(Interrective Art)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2002년 MAC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학술 심포지엄」에서 프랑스 파리1대학 안 마리 뒤게 교수는 백남준이 20세기 예술에 끼친 가장 큰 공로는 '기술의 탈(脫)신격화'이며, 그의 위대함은 '예술가의 비정통적인 직관'에 입각해 구상한 세계를 다른 여러 분야에 넓게 적용한 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백남준의 이러한 반미학적 예술행위는 20세기 서구 사유체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였으며, 예술이 전통성과 보수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급속도로 진화하는 디지털 기술문명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도전이었다. 시공간의 경계마저 허물어지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로 들어선 지금, 60년 전에 이를 예견한 백남준의 천재적 창조성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 알 수 있다. 백남준의 창조적인 예술 행위와 그 성과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어낸 국내의 연구는 2008년 개관한 경기도의 백남준미술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그 문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1960년대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백남준의 예술이 오히려 조국의 무관심 속에서 평가 절하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우려스럽다.
돌이켜 보면 해외에서 활동한 이응노와 백남준을 담아내기엔 그동안의 시도들이 턱없이 미흡했으며, 이제는 그들이 남긴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이 소실이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정된 자원의 공평한 분배가 필요한 지자체 차원의 지원과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와 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응노와 백남준은 훌륭한 예술 작품을 우리에게 남기고 갔다. 그들이 남긴 예술은 인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의 과제는 그들이 남긴 예술을 역사에 반듯하게 기록하고, 후대에 충실하게 전하는 것이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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