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귀는 이채 시인의 시 제목이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되/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1연부터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시이다. 당연한 말이면서 진리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시어다.
잡초와 꽃이라는 낱말을 보며 나는 잡초일까 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잡초일 때도 꽃일 때도 있다. 마음의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았을 때 내가 나로써 온전하다고 생각할 때는 향기 나는 꽃이지만 거짓을 말하거나 눈치를 보거나 좋지 않은 마음을 가졌을 때는 쓸모없는 잡초가 되어버린다. 사람이 필요한 곳에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할 때 우리는 꽃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50대 중년의 내담자 한 분이 처음 상담을 하면서 자신은 늘 잡초와 같았다고 했다. 지금도 잡초로 살고 있는 자신을 죽이고 싶다고 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웃음기도 전혀 없었다. 자신이 왜 꽃처럼 나무처럼 살지 못하는지 헤어진 남편이 원망스럽고 시어머니가 원망스럽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도 원망스럽다고 했다. 심지어 잘 풀리지 않는 아들과 딸까지 원망스럽다고 했다. 내담자의 마음은 만신창이다. 삶이 아름다울 리가 없다. 마음이 아름답지 않은데 세상이 아름다울 리가 있겠는가? 이분에게 이채 시인의 시를 담담하게 들려드렸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소리 내어 읽다가 멈추고 눈으로 읽었다. 읽으면서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한참동안 말을 못하던 그녀는 1연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어려워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를 되 뇌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남편과 시부모와 원가족은 자신의 먼지를 털려고만 했다는 것이다. 먼지가 안 나게 살려고 애썼고 완벽함을 추구했기에 그래서 자신에게는 먼지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늘 자신의 먼지를 털었기에 힘들었다는 것. 누구하나 자신을 덮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투사다. 자신은 보지 못하고 남 탓만 하는 내담자가 안타까웠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꽃으로 보고, 깨끗함으로 보고, 아름다움으로 보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다른 사람을 모두 꽃으로 볼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꽃이고 어떤 사람은 나무이고 어떤 사람은 풀이고 어떤 사람은 억새이고 어떤 사람은 갈대다. 그 나름대로의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특성을 인정하고 남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한 단계 긍정적으로 나아가 남을 잡초가 아닌 꽃으로 볼 줄 알아야한다는 것. 그것은 예쁜 부메랑으로 다시 나에게 돌아와 또 다시 가고 오고. 그러면서 단풍이 곱게 물이 들 듯 세상이 아름답게 물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김종진 심리상담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