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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느 휴양지의 한 호텔에 패키지 관광객들이 모였다. 따로 여행을 왔다가 눈이 맞아 오로지 육체관계에만 몰두하는 커플, 오래전 계획한 환갑 기념 여행을 와서도 자신들의 속사정에 따라 행동하는 여고 동창 삼인방,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는 신혼부부, 불륜관계지만 부부를 연기하는 커플이 그들이다. 그들은 괴생명체가 산다는 호수나 "유리창의 일부나 다름없"이 유리창에 매달려 유리를 닦는 청소부들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작품의 제목은 「유리 주의」지만 자신들의 행각을 투명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들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가 이은선은 두 번째 소설집 『유빙의 숲』을 통해 개인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재난이나 사고, 질병의 유전, 친구나 가족의 범죄를 묵과했다는 자책감과 거기서 기인한 도피생활 등에 처한 다양한 인물들의 고통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그리고는 잔혹한 현실을 어떻게든 통과해 살아낸 그들이야말로 삶에 대한 가장 지극한 애정을 가진 존재들임을 역설해 보인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작부터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는 평을 들었던 그답다.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인 「커피 다비드」에선 결국 누구도 이 삶을 떠나지 못할 것이며, 그렇다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위로를 전한다. "이 소설들이 삶의 추위에 몽롱하게 얼어 있는 당신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끝내 온기가 될 작품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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