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
그는 필자에겐 아버지 세대에 속한 분입니다. 하여 시대를 공유한 감정의 깊이를 갖지는 못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세종대왕>(1978)을 보러 갔는데 그때 그가 세종 역을 맡았었습니다. 나라에 흉년이 들면서 백성들과 고초를 함께 하느라 진수성찬을 물리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의 진면목을 본 작품은 <길소뜸>(1985)이었습니다. 대학원 학위 논문을 준비하느라 임권택 감독 영화를 분석하면서였습니다.
영화 <길소뜸>은 6·25 전쟁으로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헤어졌다가, 30년 만에 이산가족찾기 방송 현장에서 다시 만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헤어진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둘 사이에 생긴 뱃속의 아이도 고아원으로 갔습니다. 어떻게든 핏줄을 확인하여 재결합하기를 원하는 남자와 이미 다른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결합을 거부하는 여인을 신성일과 김지미가 맡아 빼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임권택 감독 하면 전통 예술을 다룬 작품 혹은 역사물을 생각하게 되지만, <길소뜸>은 <만다라>(1981), <서편제>(1993), <춘향뎐>(2000), <취화선>(2002)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걸작입니다.
<길소뜸>에서 신성일은 스타가 아니라 연륜 깊은 명배우의 면모를 여실히 발견하게 합니다. 메마른 얼굴에는 연인과 자식을 잃고 30년을 보낸 사내의 고단함과 허무함이 묻어납니다. 춘천 호반에서 저열하고 빈한하게 사는 아들과 어색한 하룻밤을 지내며,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슬픈 눈이 생각납니다. 그는 이 작품을 찍기 위해 80kg이 넘던 체중을 오로지 운동만으로 68kg까지 줄였다고 합니다. 댄디하고 모던한 스타로서의 명성만 누린 것이 아니라 전쟁과 이산의 아픈 역사까지 깊이 있게 표현한 배우가 바로 신성일이었습니다.
인생은 짧기에 스타이자 명배우였던 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길기에 그의 자취는 우리 곁에 오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영면을 애도하고 추모합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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