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미 기자 |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은 낮잠과 관련된 명언을 남길 정도로 낮잠을 아주 즐겼던 모양이다. 전쟁과 정치로 평생을 치열하게만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처칠이 시시때때로 낮잠을 즐겼다고 생각하니 꽤 인간적이다. 쏟아지는 잠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 순간이다.
얼마 전 주말,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두고 낮잠을 잤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잠에서 깼는데 부재중 전화 5통, 카카오톡 메시지 12개가 알림으로 떠 있었다. 잠깐 졸았던 사이에도 누군가 나를 애타게 찾았구나 하는 생각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지만, 이내 업무와 떨어질 수 없는 직장인의 비애를 느꼈다.
우리말에는 잠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다.
작은 소리에도 깨는 노루잠, 아기가 나비처럼 팔을 위로 벌리고 자는 나비잠, 자는 내내 이리저리 주위를 뱅뱅 돌며 자는 돌꼇잠, 개처럼 다리와 팔을 오그리고 옆으로 누워 자는 개잠, 아주 깊이든 꽃잠, 곤하게 깊이 들어 달게 자는 단잠까지. 얼마나 달콤하게 잠들었으면 말도 예쁜 단잠, 꽃잠이라 부르겠는가.
약속 없는 주말, 오후 3시쯤 창가로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단잠에 빠질 때가 있다. 재잘거리는 TV 소리는 멀어지고, 몽롱하고 나른하게 잠에 빠져든다. 길어야 한 시간이지만,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잠드는 밤잠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 있다.
누군가는 황금 같은 주말을 잠으로 허비해서야 되겠느냐고, 젊은 청춘을 즐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단잠을 자꾸만 청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직장인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번아웃증후군에 시달린다. 긴 업무에 비해 휴식시간은 짧으니 무력감이 커지면서 멍해지는 시간이 길어지는 셈이다.
점심시간, 밥 대신 잠을 선택하는 직장인이 늘었다. 수면카페나 힐링카페에서 밥 대신 잠을 먹는다. 나약해서도 아니고 새로운 트렌드를 쫓는 한낱 즐거움에 국한되는 행동은 분명 아닐게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 쉼 없이 울려대는 알람, 무언가를 습득하고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듯 살고 있다. 점심도 포기할 만큼 간절한 잠. 남은 오후를 위해 기력을 보충해야 할 만큼 고된 하루. 직장인들이 수면카페로 향하는 건 어쩌면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무의식 세계에 스트레스를 몽땅 버리는 일, 우리에겐 낮잠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윈스터 처칠은 또 이런 말을 남겼다. '내 활력의 근원은 낮잠이다.'
이해미 경제과학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