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내내 영남 알프스에 있었다. 영남 알프스는 울주, 밀양, 양산 등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의 한 줄기다. 오래 전부터 별렀던 터라 기대가 컸다. 과연 산세가 남달랐다. 왜 '알프스'란 별칭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1천m 이상의 산들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울산을 에워쌌다. 하루에 산 하나씩 올랐다. 명상하듯, 구도하듯 내 몸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깊은 숨을 토해내며 한 발, 한 발 산 정상을 향해 기어올랐다. 광막한 사막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별을 좇아 고행하는 시타르타의 깨달음에 눈곱만큼이라도 다가갈 수만 있다면….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 둘 켜지는 낯선 도시의 늦은 오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자석에 끌리듯 들어간 곳은 미역국 전문식당이었다. 조개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전복 미역국, 그리고 가자미 미역국. 두말 않고 가자미 미역국을 주문했다. 뽀얀 국물에 미역 건더기가 푸짐했다. 그 속에 신선한 가자미 한 마리가 다소곳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문득 인연이란 뭘까 생뚱맞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속초 바닷가의 그 귀여운 할머니는 안녕하실까. 자그마한 체구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길 가 허름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피우던 멋진 할머니. 일면식도 없는 여행자를 기꺼이 집에 초대해 가자미 한 마리를 기름에 튀겨 밥을 먹으라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굵게 쌍꺼풀진 부리부리한 눈매의 할머니는 담배 몇 갑을 사서 손에 쥐어주자 아이처럼 좋아했었지. "다음에 오면 꼭 들러."
의식을 치르듯 정성스럽게 가자미 살점을 발라먹었다. 부드러운 생선살이 씹히면서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바닷가라 그런지 생소한 반찬이 보였다. 서빙하는 점원한테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만면에 웃음을 띠며 꼬시래기란다.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재미났다. 점원은 반찬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계속 가져왔다. 그녀의 진심어린 상냥함에 주책맞게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따뜻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며 불현듯 인정이 몹시 그리웠다. 어떤 소설가는 외로움으로 촉발된 배고픔은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있는 음식으로 가라앉히는 게 제격이라고 했다. 엄마의 손맛! 생일날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에 하얀 쌀밥을 말아먹은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내 인생의 대장정의 시원지는 어디일까. 그 곳에서 떠나온 지 어느덧 오십 중반.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랭보는 갓 스물에 시에 대한 열정과 명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랑의 길을 나섰다. 나는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갈 뿐. 오직 그것 뿐이다.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는가. 밥벌이에 찌든 더러운 현실에 침을 퉤퉤 뱉으면 그만이다. 발가락이 부르트고 거기에 딱지가 생기는 희열감을 어찌 표현할까. 밤하늘의 서쪽에 별 하나 돋아나 둥지 찾아 헤매는 이방인 신세를 누려본 자, 안주하지 말지어다. 희미한 전등빛이 흘러나오는 울산의 어느 골목집. 그 곳에서 풍기는 진한 바다내음만큼 내 삶도 역동적일까.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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