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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기숙사에서 늦은 밤까지 FM 라디오를 듣는 것은 유일한 낙이었다. 군사독재의 엄혹한 현실에서 캠퍼스의 낭만은 사치였다. 강의는 결강하기 일쑤였고 화사한 벚꽃 아래 봄꽃의 향기는 취루탄 냄새로 대체되었다. 오월의 봄은 퇴색된 지 오래. 독재자의 민심 수습용 올림픽은 무사히 치러졌지만 독재의 상흔은 아물지 않은 채 삶을 견디는 시간들은 더디 흘러갔다.
늦은 밤 카세트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기소리만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 어디 있으랴. 귀를 후벼파는 기계음과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조의 고성, 화려한 아카펠라. 이건 뭐지? 꿈결인 듯, 현실인 듯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보헤미안 랩소디'와의 랑데부는 오랫동안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이국적인 용모의 프레디 머큐리의 잘 빠진 몸을 드러내는 타이트한 옷차림과 화려한 액세서리. 그리고 짙은 콧수염과 뻐드렁니. 그 입에서 터져나오는 괴성같은 창법은 누구도 따라갈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마마, 사람을 죽였어요, 머리에 겨눈 총구로 방아쇠를 당겨 죽였어요, 난 죽기 싫어요, 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프레디의 절규가 가슴을 후벼판다.
'퀸'의 재현이다. 지난날의 향수는 달콤하지 않다. 회한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도 관객들은 일어설 줄 모른다. 프레디 머큐리는 갔지만 그의 신화는 굳건하다. 이민자의 설움과 외로움이 퀸의 자양분이었고 관객의 몫은 차고 넘친다. 안녕 프레디, 안녕 퀸.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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