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지난 달 31일 자유한국당이 제출한 조명균 통일부장관 해임안이 국회에서 자동폐기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본회의가 열리지 못한 결과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조 장관 해임건의안을 다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표결에 임하도록 하겠다는 강수를 둔 셈이다. 당분간은 통일부장관 해임안건이 쉽게 수그러들 기미가 안 보인다.
통일부장관 해임안은 이전 정권에서도 실현된 적이 있었다. DJP(김대중+김종필) 연정 때의 일이다. 당시의 임동원 통일부장관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2001년 6월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임 장관 해임안을 제출했지만, 연정의 한 축이었던 자민련의 불참으로 부결되었다. 그러다가 9월에 임 장관 해임안이 통과되었다. 자민련이 한나라당과 합세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 후폭풍 탓에 자민련은 원내교섭단체에서 밀려났다. 그 이후 자민련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임 장관 해임안의 배경은 대북지원정책의 불투명성에서 기인했다. 훗날 대북송금 건으로 다수가 옥고를 치르는 험한 꼴을 당했다. 호언장담 했던 DJ의 평화론도 무너지면서 북핵이 등장했다. 결국은 대북송금이 북핵개발의 추동력을 제공했다는 오명도 덧씌워졌다. 노벨평화상마저도 한반도 평화정착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대북 퍼주기'란 트라우마는 지금도 상존한다.
돌이켜 보면, 임 장관 해임안은 청와대와 자민련의 소통부재에서 출발했다. 말이 연정이지, 장관 자리 서너개를 자민련에 건네주곤, 청와대가 국정은 물론 특히 대북정책을 독단적으로 틀어쥔 형국이었다. 그런 탓에, 자민련의 내각제 요구는 백지화 되었다.
연정(coalition)은 권력을 나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국정 전반에 관한 정책추진은 물론 책임까지 함께 한다는 정당간의 계약이다. 그런 연정체제임에도 대북정책에서 소외되고 정보의 공유화와 소통마저 차단된 자민련으로선 고육지책의 결단이었다고 판단된다. 훗날, 대북송금 특검의 칼날을 자민련은 피해갈 수 있었다. 반면에 참여정부가 대북송금 특검안을 수용하자, "문재인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골로 갔다"는 박지원 의원의 불만이 담긴 지적도 나왔다.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평양방문에 대거 인력이 동반했다. 그 와중에, 북측의 협상상대 이선권의 비아냥이 회자에 오르고 있다. 조 장관에게도 회담에 2-3분 늦었다고 핀잔을 던졌던 인물이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배 나온 사람한테는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 등 참 불편한 언행인지라 모멸감이 치밀어 오른다.
조 장관의 유약한 협상 태도에 일각에서 불만이 제기되었다. 그런데도 탈북인 출신 기자의 취재 불허 과정에선 강경하게 결단한 조 장관이다. 조 장관은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었으며,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강변했다. 전후 사정이 어찌되었든, 국민의 기본권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회담은 온갖 지혜와 전략을 동원하는 자리다. 때로는 상대에게 강단있게 나가야 한다. 기자에게 취재 불허는 도를 넘은 공권력행사다. 설령 북측이 그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당당하게 우리 체제의 특성과 우월성 그리고 언론문화의 현실을 제시하면서 강력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차제에 이선권을 협상상대에서 밀어내야 한다. 이런 자에게 국민이 더 이상 자존심도 상하고 모멸감을 느껴선 안 된다.
청와대는 여야와 함께 대북관련 정보공유와 정책협의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특히 대북정책은 현 정권의 독점적 사안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과거 임 장관 해임 건이 주는 시사점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조 장관 해임안이 자유한국당의 몽니(?)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정치권의 후폭풍을 불러올지 예단하기 어렵다. 이전의 통일부장관 해임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현 사태를 지켜보는 민초의 맘은 무겁고 씁쓸할 뿐이다.
/서준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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