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계족산에 생겼다. 법동소류지를 지나면 1.5m 높이의 휀스가 어림잡아 약 2㎞에 걸쳐 한 골짜기를 경계로 나누어 놓았다. 지난봄에 휀스 공사를 하기에 사유지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는 걸까 하면서 미심쩍어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물들(고라니·멧돼지 등)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문을 꼭 닫아주십시오-구청 환경과'라는 이름표까지 달아 놓았다.
세상에 이런 고약한 경우가 있는가. 150만 대전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계족산 입구에 철책대문을 달아놓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문단속을 하라니 대체 어느 나라 법인가. 짜증이 확 밀려온다. 물론 법동소류지 위아래로는 경작지가 조금 있어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경작지가 생업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저기 손바닥만 한 땅에 땅따먹기 하듯이 얼기설기 경계를 세우고는 채마를 키우는 불법 경작을 하는 곳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관상으로 보기가 흉할 뿐만 아니라 여름철 폭우라도 쏟아지면 속수무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청은 몇몇 경작주들의 민원 편의를 위해 휀스 설치 공사를 하였는지 아니면 불필요한 예산을 남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농작물 피해 비용이 인간의 심미적 자연환경과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가치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짐에도 굳이 물소리 바람소리마저 갈라놓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고라니는 번식률이 높지만 동물들 중에 서식반경이 1.6㎞로 좁다. 그러나 암컷의 발정이 불과 몇 시간만이 지속되기 때문에 서식밀도가 낮아 세계자연보존연맹에서는 적색목록에 올려놓은 보호종이다.
멧돼지는 5.1㎞로 서식반경이 넓다. 그런데 고작 2㎞ 휀스막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발상이 무지몽매하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이란 문자(文子)의 도덕에 나오는 말이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음율을 조정하려면 줄을 받치고 있는 기러기 발을 움직여가며 조정해야 하는데 기러기 발에 아교를 붙여 놓았으니 음을 조절할 수 없게 되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말이다. 어찌 생각하면 휀스를 친 것은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우(愚)를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구청은 휀스를 철거하고 계족산을 찾는 관광객과 등산객들을 위해 등산로 정비사업이나 산책로 또는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계족산의 환경보존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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