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페라 무대는 무엇보다 다채로운 콘셉트의 세트가 시각적으로 두드러졌다. 현대인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만큼, 2068년으로 설정된 시대적 배경이 상상력 가득한 세트 구성을 가능케 했다. 1막에서 고색창연한 분위기의 숙소 공간, 2막에서 근대풍 벽돌 건물과 현대풍 아케이드의 조합, 3막에서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는 듯 단순화된 거리 풍경, 4막에서 다시 1막에서 쓰였던 세트의 재등장까지 특정 콘셉트에 얽매이지 않는 세트 연출을 보여준다.
다채로운 세트 구성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서사의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감정선 변화를 대변하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빈 창고의 녹슨 철골조를 연상시키는 1막의 세트는 가난 속에서도 사랑을 싹 틔우는 미미와 로돌포의 이야기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입힌다. 애잔한 1막과 달리 화려함이 두드러지는 2막에서는 아케이드와 카페 테라스를 배경으로 무제타 등의 흥겨운 정취가 강조된다.
미미의 병세와 등장인물 간 심리적 갈등이 부각되는 3막에서는 차갑고 쓸쓸한 분위기의 철제 벽면이 쓰이기도 한다. 미미가 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4막에서는 1막의 세트가 재등장해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이별을 결부시키고 서사의 완결성을 높인다.
정적인 자세로 발성에만 집중하는 기존 오페라와 달리 동적 표현을 강화하고 현대적 분위기에 맞게 자연스런 캐릭터 연기를 선보인 시도도 인상적이다. 낭만적인 로돌포, 댄디한 마르첼로, 익살스런 쇼나르, 듬직한 콜리네가 각자의 배역에 맞는 음색으로 캐릭터를 구축한다. 팜므프라질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미미의 연기에서 정열적 면모가 엿보이는 낯선 인상도 있지만, 서사와 더불어 캐릭터에 주안점을 둔 연출가의 의도가 십분 발휘됐다.
라보엠 공연이 막을 내리고 관객들은 뮤지컬 못지않은 감동과 흥미를 느꼈다는 평가를 내기도 했다. 남성 가수의 독창이 끝날 때 외치는 '보라보', 여성 가수가 독창을 마쳤을 때 말하는 '브라바', 남녀 혼성 중창 후의 '브라비'처럼 장면에 따른 환호가 적절히 터져 나와, 이날 공연에서는 대전 관객의 높은 수준이 돋보이기도 했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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