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아빠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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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아빠도 모르겠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8-11-0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주말에 열차로 상경하던 중 우연히 만난 죽마고우와 세상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귀에 번쩍 띄는 일화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붕괴되고 있는 학교교육 현실에 타산지석이 될까 해서 이야기 타래를 풀어본다.

영등포구 문래동에 소재한 서울문래국민학교(문래초등학교 전신) 5학년 3교시 자연시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담임선생님이 유전과 혈액형에 관한 수업을 마친 후 형성평가를 했다. 수업 내용이 마침 학생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유전과 혈액형에 관한 것이어서 학생들은 남다른 관심과 흥미에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평가 답안지를 걷은 후 담임선생님이 평가 문제를 풀어 주고 있었다. 문항은 3번 문항까지 세 문제였다. 1, 2번 문항은 순조롭게 통과했는데 3번 문제가 좀 어려웠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정답과 풀이 과정을 칠판에 또박또박 판서를 해 주셨다. 그런데 남학생 하나가 담임선생님의 판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는 것이었다. 이해가 잘 안 되었든지, 아니면 자신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과 다른 것 같은 눈치였다. 침착하고 신중한 태도로 2,3분 동안 생각해 보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손을 번쩍 들고 담임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



"무슨 질문? "

"선생님은 문제 3번 답을 ②번으로 하시고 풀이 과정을 판서와 같이 하셨는데 저는 그 문제의 정답이 ②가 아니고 ③이며, 풀이 과정은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제가 틀렸나요? "

담임선생님은 순간 여유를 두고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에 말씀하시기를 당신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 맞는다고 말씀하셨다. 학생은 담임선생님 말씀이 납득이 안 되는지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하교 시간이 되어 집에 왔다. 집에 와서도 의문이 안 풀렸는지 자기 아빠한테 질문을 했다. 그의 아빠는 고려대학교 생물학교수였다.

"우리 오늘 수업시간에 다룬 문제인데 담임선생님은 A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이해가 안 돼요. 나는 B와 같이 생각했는데 우리 담임선생님이 풀어 주신 것이 맞아요, 아니면 제가 생각한 것이 맞아요? "

유전과 혈액형에 관한 내용이니까 생물학박사인 자기 아빠가 통쾌한 답변을 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에 아들이 집에 와서 그의 아빠한테 하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아빠 엄마의 입장에서 자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태도의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응 네 생각이 맞았어. 너희 담임선생님이 틀렸어."

"너희 선생님 되게 실력도 없다. 그러면서 어떻게 너희들 가르친다니 ! "

"너희 선생님이 잘 못 가르쳤어. 엄마가 잘 가르쳐 줄 게. 잘 들어봐!" 등등의 다양한 태도 반응들이 나올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단순하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자식 교육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반응 태도 여하에 따라 자식이 성공의 길로 가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식 교육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일이 자식 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아들딸들이 이런 질문을 해왔을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현명한 반응이 될까? 한 번 고민에 빠져보았으면 한다.

교수 아빠가 아들 얘기를 듣고 문제를 살펴보니 담임선생님 생각에 오류가 있었고 아들 생각이 옳은 것이었다. 순간 생물학 교수인 아빠는 뻔히 아는 문제인데도 아들한테는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팔자에 없는 쇼를 하는 것이었다. 어려워서 한참 궁리하는 체하다 이 방 저 방에 있는 서재에 가서 이 책 저 책을 들춰 찾아보는 시간으로 무려 1시간 30분이 지났다. 그리고 하는 말이 문제가 어려워서 전공서적 이 책 저 책을 다 뒤적여 보았지만 문제가 어려워서 아빠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편지 내용을 요약하면

『제 아들놈이 어제 담임선생님 자연 시간에 수업하셨던 유전과 혈액형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와서 선생님과 제 아들놈이 문제 푼 것을 앞에 놓고 둘 중에서 누구의 것이 맞느냐고 하기에 아빠도 어려워서 못 풀겠다고 했습니다. 외람되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어 3번 문제를 보니 다음과 같이 풀어야 맞을 것 같습니다. 풀이 과정은 ○○○~○○○해서 정답은 ③이 답입니다. 저도 모른다고 했으니 제 아들놈이 학교에 가면 적당한 시간 불러서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담임선생님은 학부형 편지로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다음날 학생 아빠가 얘기한 대로 실행했다. 학생은 자기 아빠가 생물학박사 대학교수이어서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려워서 못 풀겠다고 한 얘기를 듣고 그 문제가 엄청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학생은 우리 아빠도 못 푸는 그 어려운 문제를 담임선생님께서 바르게 풀어 주셨다는 새로운 인식으로 선생님을 신뢰하고 지도를 열심히 받았다. 그 후로 학생은 선생님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의아심이 없이 열심히 공부했다. 원래 머리가 총명한데다가 선생님을 믿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그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였다. 그리하여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학습효과가 대학과정까지 이어졌다. 그리하여 대학 졸업 후에는 방제청 요직행정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야기 속의 학부모가 내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훌륭하기가 백만 불짜리 보석 같은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자식의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가르쳐도 학생 자신이 믿질 않기 때문에 교육의 성과는 기대할 수 없다

대한(大旱) 칠 년에 나온 새싹 같이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심을 잃지 않게 한 아빠의 주옥같은 한 마디.

"아빠도 모르겠다."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우리 학부모들에게 녹슬지 않는 만년키의 방부제 명언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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