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광목곽묘 서쪽에서 발견한 찰갑과 신라 토기 |
찰갑은 작은 미늘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만든 갑옷으로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이외에 목을 뒷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견갑)가 함께 확인됐다.
이와 함께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등 신라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이 함께 부장됐는데, 신라 토기의 연대를 고려했을 때 4세기 강릉지방에 주둔했던 신라 장수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395년 말갈이 북쪽 변방에 침입해 신라가 크게 패했고, 450년에는 하슬라(강릉의 옛 지명) 성주 삼직이 고구려의 변방 장수를 살해한 사건이 전해져 4~5세기 강릉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신라 간 국경 충돌사건이 빈번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강릉지역에서는 많은 수의 신라 고분이 조사된 바 있는데, 특히 초당동 고분군의 대형 석곽묘에서 금동관, 관장식(관식), 호접형(나비모양) 금동 관모장식 등 신라 상류층의 물건이 출토된 바 있어 신라가 강릉 지역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발굴기관인 (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완전한 형태의 찰갑이 영동 지역에서 발견된 첫 번째 사례다. 신라의 영동지역 진출의 시점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학술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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