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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런 생각이 네겐 슬퍼 보이겠다 싶지만 알다시피 난 슬픈 사람은 아니야. 가끔 난 행복해, 노래에 있듯이 마음으로 행복해, 내가 항상 그걸 보여 줄 수는 없더라도. 뭐든 그저 지나치는 무언가일 뿐이야.'-본문 중에서
'이제 네 남편도 죽었어.' 소설은 갑자기 뺨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처럼 글의 문을 연다. 주인공 엘리노르와 헨닝, 안나와 게오르그 커플은 우연히 알게 된 뒤 절친한 사이가 된다. 어느 날, 함께 휴가를 떠난 스키장에서 눈사태로 헨닝과 안나가 세상을 떠난다. 그 비극의 뒤를 따라 죽은 두 사람이 몰래 만나왔다는 사실이 엘리노르와 게오르그에게 닥쳐온다. 남은 엘리노르와 게오르그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둘은 서로가 동시에 겪은 상실과 배신의 고통을 서로 위로해 가면서 그 이후의 삶을 살아 나가게 된다.
소설의 화자인 엘리노르가 말한 '네 남편'은 안나의 남편이었던 게오르그다. 서로 닮은 슬픔을 안고 같이 살았던 그마저 죽자, 엘리노르는 사랑했던 모두가 죽고 홀로 남은 처절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의 독백은 미혼모가 되어 외롭게 자신을 키운 엄마, 그리고 남편과 친구를 잃은 자신을 넘나들며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독자에게 전한다. 독일군을 사랑한 잡년의 자식으로 들어야만 했던 존재 자체에 대한 말없는 비난, 사랑했던 사람들의 연이은 배신, 자신에게만 찾아오지 않는 행운 같은 것들 때문에 그의 마음은 닫히고 때로는 고집스럽기도 하다. '생이 끝나면 살면서 일어난 일들은 수수께끼가 되어 버려.' 그는 모든 일이 '뭐든 그저 지나치는 무언가'일 뿐이며 '가끔 난 행복해'라고 고백한다.
영화감독 출신인 작가는 엘리노르가 가진 감정의 결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섬세하게 묘사한다. 스릴러나 판타지가 아닌 새로운 북유럽 문학을 만나보는 즐거움도 신선하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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