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투철한 작가정신, 양태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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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투철한 작가정신, 양태의 시인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8-10-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가을이 깊어갑니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다, 스스로 손을 놓습니다. 나무의 겨울나기 짐 덜기 위한 용단이요, 배려지요. 덕분에 쏟아져 내린 시어들이 꽃단장하고 벤치에 둘러 앉아 글을 씁니다. 가으내 퇴고를 거듭하지요. 이리저리 구르는 시어의 제자리는 어디일까? 어떻게 마주 잡아야 시가 될까? 무엇을 담을까?

지난여름이었어요. 한 저자가 보내준 시집을 읽고 있는데, 시인의 편지가 당도하였습니다. 출판기념회나 축하연이 있나 보다 생각하며 봉투를 열었습니다. 내용을 읽으며 절로 감탄이 나왔지요. 세상을 대충 살아온 필자에게는 경이적인 일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죄송합니다. // 불량품을 보내드렸습니다. / 어쩌지요? // 양태의 4시집 '툭 / 125쪽 열째 줄 '수유산'은 / '수미산'을 잘 못 적은 것입니다. // 이렇게 찬찬치 못하다니 / 정말 부끄럽습니다. / 처음 사랑에 실연당한 기분입니다. // 두터워 지는 녹음처럼 / 은혜로운 나날이시길 기원합니다. // 2018년 7월 7일 // 양태의 올림"

확인해 보니 한자와 병기한 내용이었습니다. '수유산須彌山' 이렇게 기록된 것입니다. 글자 하나 틀렸다고 편지를...... 해설에 있는 내용으로 저자 글도 아닙니다. 요즈음은 문서화일로 원고를 보냅니다. 누구 잘못인지 제삼자는 알 수 없지요. 조작이 서툴러 오가다 바뀌기도 합니다. 책 만들어 보니 편집과정에서 바뀌는 수도 있더군요. 물론, 최종 책임자는 저자이지요. 오탈자 수에 따라 다르지만, 발송전에 발견되면 정정해서 보내기도 합니다. 어떻든 한두 군데 오탈자 없는 책이 어디 있으랴 하며, 대체로 그냥 넘어가지요.



작가 대부분이 내용은 물론, 시어 선택이나 문장구성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요. 그러하지 못한 필자에게는 큰 공부요, 깨우침이 되었습니다. 화가가 사사할 때 제자의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커다란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 그리고 있는 화선지에 북 그어 버린다는 얘기는 들은 일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가르침이지요. 얼렁뚱땅 얼버무려 넘어가는 것을 아예 차단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잘라 내거나 버리는 일을 잘 해야 되지요. 타인에게 관대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냉혹하리만큼 철저한 것이 으뜸 작가정신 아닐까 합니다.

양태의 시인은 10여 년 전 부여 시낭송회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한눈에 깔끔하고 반듯한 풍모는 알아 봤지요. 그렇게 까칠한 성격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이러저러한 일로 더러 뵙고, 시집을 읽으며 깔끔하고 단정한 성정을 느꼈습니다. 치열한 창작정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는 결벽증에 가까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군요. 평생 교육계에 몸담게 되면, 습관적으로 교육적이거나 생활지도성 어투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글에도 그러한 것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시인의 생활이나 작품 어디에도 그러한 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자기성찰自己省察과 절차탁마切磋琢磨가 먼저였습니다. 폭넓은 내면세계와 신선한 발상, 재기 넘치는 시풍, 절제되고 탁월한 시어 선택이 돋보였습니다.

양태의 시인은 1942년 부여 생으로 평생 교단에 몸담아, 후진 양성과 교육발전에 공헌하고 2004년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였습니다. 2002년 시집 『어오러지어오러지』로 문단에 선 뵌 후, 2006년 월간《스토리문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다소 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겠습니다. 《전원》 창립 동인이며,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 《호서문학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기한 첫 시집 이후 『耳鳴』, 『혼자 우는 뒷북』, 『'툭』으로 독자와 만나고 있습니다. 시인의 뜨거운 예술혼이 더욱 빛나기를 기대하며,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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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의 시집, 혼자 우는 뒷북 표지
다음은 『혼자 우는 뒷북』에 게재된 발시跋詩 「물 건너」전문입니다.



신석기 시대 영국 솔즈베리에는 죽은 자들의 마을 스톤헨지가 있었네

더링턴웰스에는 산 자들의 마을 우드헨지가 있었네

스톤헨지에서 에이번강을 건너 우드헨지로 갔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쪽 산 자들의 마을에서

나일강을 건너 스핑크스가 지키는 저쪽 죽은 자들의 마을

모래벌판의 피라미드로 갔네



부처님 제자들은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가고

예수님 제자들은 요단강 건너 천국으로 가고

우리네 옛 조상님들은 삼도천 건너 저승 가셨네



영국에서나, 이집트에서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처임을 믿건, 예수님을 믿건, 아무것도 믿지 않건

물, 건너와서 물, 건너가네



어렸을 적 어머니, 물가에 가지마라 신신당부하셨는데

어언간 나, 강가에 나와 서성대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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