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 '꿩의 바람꽃'은 인지상정과 불교적 초연성 사이에서 죄와 벌을 논하는 심오한 주제를 담았다. 비극적 사건을 겪은 이후 전국 명찰(名刹)과 암자를 돌며 수신의 길을 걷던 주인공 김 씨가 자력구제를 선택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는 서사로 그려냈다. 원수에게 복수를 감행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란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전국을 유랑하며 업보를 해소하던 주인공이 불교 교의를 실천하는 대신 세속의 인륜을 택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적 한계를 제시하기도 한다.
소설집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정 작가는 파울로 코엘료와 달라이라마를 언급하고 인도여행 중 감상을 소개한다. 인간의 존재와 성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에필로그 중 소설 '꿩의 바람꽃'과 관련해 눈길이 가는 대목은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다'와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하더라도 우리는 어려움과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이다. 75년의 인생을 살아낸 작가의 달관적 태도가 작품 전반을 통해 도저하게 드러난다.
오는 25일부터 대전무역전시관에서 개최되는 대전국제아트쇼에서는 정 작가의 팬 사인회가 열린다. 행사장에는 작가가 11편의 주인공을 그린 회화 작품도 전시된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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