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무명시인과 함께 한 죽음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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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무명시인과 함께 한 죽음의 향연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8-10-1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대덕구에 대전보훈병원이 있습니다. 충청권 국가유공자 근접진료를 위해 설립된 병원이지요. 일반인도 진료 받을 수 있다합니다. 조금 외지지만 도심을 등지고 숲에 둘러싸여 있지요. 무엇보다 쾌적해서 좋더군요.

건강한 사람은 모르는 경우가 있지요. 종합병원에 가면 호스피스병동이 있습니다. 필자도 환우 위문 다니며 알았습니다. 불치 환자가 죽음을 앞두게 되면 심한 통증과 각종 합병증, 우울, 착란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되나봅니다. 그를 완화시키고 돌보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남은 삶을 보다 편안하고 충만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지요. 방문하였을 때 임종을 맞는 울음소리도 종종 들었습니다.

죽음, 삶이 규명되지 않고는 해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회학이 그렇듯 정답이 없지요. 생물학적으로야, 호흡이나 심장박동이 멎으면 생명현상이 끝난 것으로 보지요.

내세관은 주의주장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죽음 후의 세상, 상상일 뿐 누구도 알지 못하지요. 죽음은 인간의 지각이나 경험 영역을 벗어난 범주입니다. 그러기에 종교,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생각합니다. 산다고 하는 것은 죽음에 가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의 세계는 혼자 가는 것이지요, 함께 가지 못합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인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실체도 없고 구분도 없는 무의 세계는 아닐는지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지요.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천수를 누리고 편안히 죽는 것을 오복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9988234'란 말이 유행하더군요. 백수(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앓다가 죽는 것이라 합니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을 희망합니다. 물론, 고통 없이 편안히 죽기도 하지요. 타의나 자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고,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죽어가는 경우도 많지요. 다른 하나는 스스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서산대사(休靜, 1520 ~ 1604, 승려, 승군장)나 퇴계 이황(李滉, 1501 ~ 1570, 조선 문신, 학자)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꼿꼿이 앉아 세상을 하직했다 합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초가을 몇몇 사람이 보훈병원에 모였습니다. 호스피스병동 프로그램 실이었지요. 초대한 사람과 만난 지 10여 개월 된 그의 연인, 초대받은 일곱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주인공은 얼굴 검버섯이 더욱 짙어졌더군요. 암이 발견된 후, 스스로 치료를 단념했다 들었습니다.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인 것이지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생명체에 대비되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주인공은 죽음을 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기록으로 남으면 훗날 후회하는 일이 생길 것 같다며, 등단 시인이지만 시를 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내용들에도 '타들어가는 시간', '낙엽 지는 가을', '겨울나기', '허무', '고개 숙인 운명'등의 시어가 주로 나타나더군요. 반면, 시를 몹시 사랑하고 문인과의 어울림을 즐겼나 봅니다. 저음이 좋아, 시낭송도 멋들어지고 맛깔스럽게 잘하였지요. 자료를 찾아보니, 전국을 가리지 않고 다닌 흔적이 남아있더군요. 이외수(李外秀, 1946~ )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자작시 '흩어진 시간'을 주로 낭송했습니다. 온전한 작품이 있지 않아, 전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병상에 눕기 전 봄날 어느 행사장에 나와, 결혼할 사이라며 연인을 소개했습니다. 늦게 만나 외로움과 고독, 삶의 고통에서 벗어난 두 사람,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요. 부럽게까지 보였습니다. 돌연 그 행복이 일거에 무너지는 아픔은 어떨까? 저절로 울컥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기다림은 무엇일까요?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할 때 함께 했던 벗들을 불러 놓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 기다림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달뜨고 설레었는지? 기력이 쇠잔해 잠만 자던 사람이 휠체어에 꼿꼿이 앉아 환한 얼굴, 생기 넘치는 몸짓으로 맞이하더군요. 일시적으로 다시 살아났었나 봅니다.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O시인님,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힘내세요!!!"를 붙여놓고, 돌아가며 시낭송과 재능을 한껏 발휘했습니다. 죽음의 향연, 죽음을 함께하는 잔치가 되어버렸지요. 우리가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자기표현이요, 자기만족 일수 있습니다. 감동을 나누고, 의미 전달, 관심과 인정받기 위해서지요. 그 어느 무대보다 함께한 모두에게 짜릿한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2주후 부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어느 듯 무명시인이 자리를 비운지 일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죽고 나면 아무리 높은 명성도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그러기에 몽테뉴((Montaigne, M. 1533~1592, 프랑스 사상가)가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고 하였나 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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