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좋았더냐?" 이 철지난 구닥다리 대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의 외피는 환상이고 속임수에 불과하다. 경성 모던보이 백석을 능가하는 핸섬가이 이수일과 매혹적인 미모의 심순애. 청춘남녀의 두근거림, 달콤한 밀어, 장밋빛 미래는 언제까지 일까. 사랑이냐, 돈이냐. 순수한 청년 이수일을 사랑하는 심순애는 결정을 해야 한다. 사랑 이상을 원하는 심순애에게 이수일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자본주의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순애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다. "순애, 나는 너를 사랑해. 제발 나를 사랑해다오." 이수일의 절규가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아, 지질하고 빈약한 사랑의 언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상처받지 않는 안전한 사랑도 있을까. 보상받지 못하는 일방적인 사랑에 빠지는 것도 어쩌면 불가피한 운명이라고도 하겠다. 핏빛과 장밋빛이 난무하는 전쟁같은 사랑만이 사랑이 아닌 것이다. 다만 갈증과 덧없음에 몸부림칠 뿐이다. 그 쓰린 추억을 어떻게 잊을까. 가질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열병. 커피광고 속의 우아한 여성모델에 대한 질투심으로 괴로워했다. 모든 여자가 경쟁상대로 여겨졌다. 그 모델이 아름다운 눈, 매력적인 미소로 그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가슴이 송곳에 찔린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가 나 같은 건 눈곱만큼도 생각 안할 게 뻔한데 말이다. 차라리 그에게 모욕이라도 당하는 게 낫겠다고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꼬마 로켓맨', '늙다리', '전쟁 미치광이', '병든 강아지'.
스탕달은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라고 했다. 진정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흠이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 완벽함은 곧 싫증을 느끼게 된다.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 시시하다. 말폭탄을 주고 받다 한번 만나고 나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만천하에 공표한 연인의 변덕이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연애의 법칙을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중무장된 트럼프는 타고난 승부사다. 그는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그래서 연애 고수들의 피 튀기는 게임은 드라마틱했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중매쟁이는 가슴을 졸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느덧 스산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가슴이 시려온다. 사랑이 무르익기 직전이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기만 하면 그들의 관계는 빠르게 진전될 것이다. 그래야 영 못미더워하는 사람들의 의혹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 연인이 깨지길 바라는 얄미운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 보란 듯이 서로의 진실한 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밀당도 웬만큼 했지 않나.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다. 산 넘고 물 건너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쪽박나면 얼마나 허무하냔 말이다. 가뭄과 태풍과 폭염을 견뎌냈으니 이제 달콤한 열매를 따야 하지 않겠는가.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다.<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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