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졸업 후 오랜만에 다시 보았을 때 외국에 간다고 말했던 것 같았는데... 그랬다. 제자는 지금 외국에 살고 있으며 일도 하고 어느 새 딸아이가 대학에 다닌다고 하였다. 반갑게 안부를 묻고 이 말 저 말 나누다가 옛 기억을 전하며 웃었다. 당시 제자가 경제적 사정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 없다고 하자 필자가 여행비를 주며 다녀오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 돈으로 전기세도 내고 급한 불 끄느라 그만 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하였다. 아, 그랬던가. 그러고 보니 들었던 것도 같고. 내게는 잊혀진 기억이 제자에게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는가 보다.
제자는 다음 달쯤 한국에 올 예정인데 문득 생각나서 전화했는데 연결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좋아하였다.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고 서로 카톡으로 연결을 확인한 후 나 역시 잠시 창밖을 보며 반가움을 되새겼다. 올 가을 접어들면서 정년퇴직 시기를 따져 보게 되었는데 어찌어찌 시간만 흘려보낸 것 같아서 마음이 가라앉아 지내던 차에 제자의 전화에 힘입어 그 하루를 따뜻하게 보냈다.
그러고 보니 26년차 교수인 나는 제자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아니 기억 속에 남아있기나 할까? 인간의 기억이란 통째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므로 어느 정도 기억하다가 잊혀지는 내용과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이 있기에 말이다. 당연히 감정이 얽힌 내용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또한 기억하는 시기나 형편 등에 따라 재구성되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저 그런 관계로 지냈다면 기억에서 삭제될 것이고 특별하게 느끼는 관계였다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처럼 교수와 학생, 사제지간에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지낸다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갈 만큼 특별한 내용도 없을 것 같다. 성적 등에 신경 쓰며 유난히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이 많아지고, 일명 김영란법 이후 교수는 학생과 업무관련성이 있는 관계에 놓임으로써 예전처럼 좋은 뜻으로 무엇을 주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피하느라 수업 중에 쓰는 용어조차 주의하기 일쑤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조심스러운 관계, 문제가 되지 않을 상호작용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감정이 얽히고 말 것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 대전캠퍼스에서 처음으로 졸업한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학과 대표를 오래도록 했던 제자가 동기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모두 외우고 있어서 우리는 감동했었다. 그 제자가 암기력이 뛰어나거나 대표이기에 이름을 많이 불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기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대표로서 느꼈던 책임감, 부담감, 자부심 등이었으리라. 학교 다닐 때는 부담이었겠지만 졸업 후에는 이름과 더불어 동기들을 기억하며 미소짓는 시간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요새는 한 학기마다 반대표를 바꾸는 일도 허다하니 기억으로 남을 것도 없을 것 같다.
어느 학자이었든가 기억하는 것(to remember)이 곧 사는 것(to live)이라고 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과거는 우리가 기억하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누군가를 지지해주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보며, 기억 속에 떠오르는 누군가에게 이 가을 편지라도 한 장 써보자.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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