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배 과장 |
"통일은 우리의 소원일 수만은 없다. 오로지 통일만이 살길이어라!” 1980~90년대 많이 불리던 민중가요인 '애국의 길'의 일부 소절이다. 수많은 국민과 지식인들은 다 알고 얘기했던 '통일 살길론'을 당시 위정자들은 왜 그리 귀담아듣지 않았을까?
물론 그 이유를 그때나 지금의 국민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불과 몇 해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우스갯소리처럼 국민의 입방아에 오르던 때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가 이끄는 ‘통일기관차’는 전 국민으로 하여금 그 어느 때보다 큰 통일의 가능성을 만끽하게 하며 달리고 있다.
따스한 봄바람과 향기로운 봄꽃이 만발했던 올해 4월 27일, 판문점에 있었던 첫 정상회담이 그 시발점이었다면, 지난 9월 18일부터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은 그것을 확인하는 중간 기착지였다고 할만하다.
많은 사람의 표현대로, 두 정상의 만남이나 포옹을 몇 번이나 봐왔지만 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격한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느낀 무엇은 아니었다. 또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정상회담 과정에서 있었던 스토리를 보여주는 여러 사진과 동영상들은 제각각 그 나름의 전율로 온 국민의 가슴에 큼지막한 기쁨의 흔적들을 새기고 있다.
그러나 감동의 파노라마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평양의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아 15만 북한 주민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연설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모자라, 우리 8000만 겨레의 영산인 백두산에 함께 올라 전 세계를 향해 던진 메시지는 가히 활화산 같은 대폭발이요 분출이라 할 만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우리 눈앞에 쉴 새 없이 펼쳐지니 조국 분단의 아픔을 경험하고 사는 국민으로서 이제야말로 새로운 희망과 꿈의 실현을 기대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감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은 무엇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 다가올 통일의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한 상설면회소 설치 등에서부터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끊어진 도로와 철도를 잇는 등의 경제협력은 물론 문화와 체육 교류 활성화 등 비군사적인 분야에서도 해야 할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70여년이 넘게 떨어져 살아온 남과 북 8000만 겨레의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가장 큰 지름길이자 효과를 가져 올 교류 분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전통문화 분야이며 그중에서도 무형유산의 상호 협력을 통한 민족의 동질감 회복은 가장 먼저 생각해볼 만하다.
현재 남과 북의 무형유산 중 ‘아리랑과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각각 등재되어 있으며, 올해는 씨름이 등재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정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중 북한에서 유래한 것만도 봉산탈춤, 북청사자놀음 등 9개 종목이 있고 남과 북에서 유사하게 지정된 무형문화재(북한의 국가비물질문화유산)도 농악, 판소리 등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 10월 4일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비롯한 160여명의 남측대표단은 평양을 방문해 2007년의 10·4선언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이 자리에서는 문화유산을 통한 교류 협력의 방안도 논의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앞으로도 그런 논의의 자리는 자주 마련될 것이다.
현 정부가 이끄는 통일기관차가 국가 간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이 시기에 우리 민족에게 오직 살길을 가져다줄 통일의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관차가 안전하고 빠르게 터널과 교량을 지나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문화유산의 교류협력이 무엇보다 값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길배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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