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사 때마다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인간사회에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겠지요. 그러기에,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기도 했지요. 최소한의 기준치에도 부합되지 못하는 사람,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보통이상의 과오를 가진 자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정당도 위기에 처하면, 같은 말이긴 하나, 혁신이다, 쇄신이다, 개혁이다 외칩니다. 앉아서 고사하는 것 보다야 낫겠지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 옵니다. 기존 조직원이나 조직은 무엇이란 말이지요? 모두 허접 하거나 정의롭지 못하다는 말이 됩니다. 매사가 공정하지 못하고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좌우된다는 말도 되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도산공원이 있습니다. 공원 안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鎬, 1878 ~ 1938) 선생을 기리는 각종시설과 더불어 어록비가 몇 개 세워져있지요. 그 중 하나에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시대를 이끌고 민족을 일깨울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하는 청년에게 한 말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를 기리는 수많은 사람 대부분이 아는 말입니다. 스스로 인물공부도 하여야 하겠지만, 인물양성도 하여야 하겠지요. 얼마나 인물 될 공부를 하였나, 인물양성에 기여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근현대 성자로까지 칭송받는 사람 중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1895 ~ 1986)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는 개인의 지위가 4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사제계급, 전사계급, 상인계급, 농민계급이지요. 각각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 하더군요. 지금은 특권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브라만은 인도의 지적 지도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브라만 출신입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고 나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서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진리, 자유 등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독립된 완전한 자유에 눈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떠한 권위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체의 권위와 영광도 거부하지요.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교단인 동방성단東方星團을 스스로 해체하기도 합니다. 자신이나 교단이 신앙 또는 추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당파의 존재가 가장 위험하다. 인간보다는 방식을 중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사회의 본질적 기능의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 바로 그것이 뭔가를 쌓아올릴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모든 주의, 주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는 스스로의 한계를 앎을 말한다', '명상 없는 삶에는 향과 사랑이 부재한다' 등 대부분 명상서적들이 그러하듯,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말들로 가득하지요. 살아오면서 보니,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1980)를 시작으로 그의 수많은 명상록이 소개되더군요. 50여권에 달해 다 읽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그를 만든 것이 신지협회(神知協會, Theosophical Society)라는 단체라는 것에 주목합니다. 책의 해설에 의하면, 신지협회는 1875년 뉴욕에서 설립되어 1882년 본부가 인도로 옮겨집니다. 협회는 인종·성·피부색의 구별 없이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를 형성하며, 종교·철학·과학에 대한 비교 연구를 권장하고, 설명되지 않은 자연법칙과 인간의 잠재력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이 학회는, 스스로를 완성하여 인류의 영적인 진화를 지도하는 위대한 스승들(Great Masters)의 존재를 강조하고, 그를 양성할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2대회장인 베산트(Annie Besant, 1847 ~ 1933, 인도 독립운동 지도자이기도 함)에 의해 미래의 위대한 '세계의 교사'로 크리슈나무르티가 발탁됩니다. 이후 협회의 철저한 지도를 받지요.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지요. 최소한의 자질 함양을 위한 수련과정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불현 듯, 인물이 나타나기만 기다려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스로 깨우쳐 인물 되기 공부를 하거나, 인물 되기를 종용만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기존 제도권 교육에 전문화 과정이 있습니다. 말과 달리 보편적 교육이지요. 엄청나게 다원화되고 특화된 사회,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물 양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해당 분야 종사자 스스로 필요한 인재 양성에 힘쓰면 어떨까요?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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