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감상>아침 출근길, 낡은 붉은 벽돌집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을 보았다. 혼자서는 오롯이 살아 갈 수 없는 담쟁이. 살포시 담벼락, 소나무에 달라붙어 생명을 이어간다. 칡넝쿨처럼 누굴 죽이고 혼자서만 살지 않는다.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민다. 담쟁이는 흙담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감싸 안고, 포근히 안긴다.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움츠러든다. 배고픈거야 면했다지만 행복은 더 멀리 달아나고 있다. 서울의 집 한 채 마련하려면 안 먹고 안쓰고 몇 년을 모아야 할까. 돈이 없어, 취업이 안돼 결혼도 못하고 연애도 안하고…. 이들의 절망의 나락은 어디까지 떨어질까. 노인들의 고독한 하루살이는 언제 끝날까. 담쟁이처럼 우리 서로 잡아주고 이끌어주며 저 높은 벽을 넘어보자.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