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행복과 소강사회(小康社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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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행복과 소강사회(小康社會)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9-30 15:2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저는 팔순이 다 된 나이에 비로소 행복이라는 걸 느끼고 살아갑니다.

어떻게 행복을 느끼느냐구요?

제 아내는 스물세 살에 한 살 위인 저에게 시집왔습니다. 제게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 없이 자란 동생들이 셋이나 있습니다. 그런 가난한 가정의 장남에게 말입니다. 스물세 살에 뭘 알았겠습니까? 아침이면 초록색 저고리와 연두색 치마에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나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던 모습이 눈에 어립니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5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건강했던 그에게 치매라는 병이 찾아오더군요. 처음 1년은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그저 욕을 자주하고, 집에 도둑이 들어 물건 가져갔다는 말을 자주 했을 뿐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치매 증상 같으니 병원에 가보라 하더군요. 그래서 치매 1년쯤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요즈음 저는 늘 제 아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줍니다. 다른 아무 것도 그에게는 필요없는 행동이지만 제 웃는 얼굴만은 그에게 따스함과 포근함을 안겨주는가 봅니다. 그래서 아내도 함께 웃으며 제 품에 얼굴을 파묻고 '고마워'를 연발하니까요.

저는 제 아내와 운동을 가거나 시내에 갈 때마다 공중 화장실을 지나게 되면 화장실 가기를 권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병을 앓는 환자들은 괜찮다고 대답하기 일쑵니다.

그러니까 지난 9월 24일에 신해운대행 새마을 열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4호차였습니다.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대변이 마렵다고 하더군요. 불안했습니다. 화장실을 가려면 저쪽 끝에 있는 앞쪽으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아내 손을 잡고 앞으로 가는 시간이 퍽 긴 시간이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여자 화장실은 다른 분이 사용하고 있더군요. 할 수없이 남자화장실을 사용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동안을 기다리지 못하고 화장실에 오는 동안 실례를 한 것입니다.

열차 안에서 일어났던 일은 생략하겠습니다. 왜냐구요? 열차 안은 밀폐된 공간이라 냄새를 환기하기가 어렵고, 열차의 화장실은 좁아서 성인 두 사람이 들어가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과 화장실의 수도꼭지는 가느다래서 물도 조금씩밖에 나오지 않는데다가 그나마도 3~4초 나오다가는 그치고 잠시 있다가 또 다시 나오는 것이 반복 되고 있는 환경에서 어떻게 몸을 씻기고, 옷을 빨아 입혔는지 일일이 다 말씀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객 전무(조성천)가 화장지 뭉치를 들고 달려와 안으로 밀어 넣어주고, 손님들에게 수소문하여 물티슈를 얻어다가 넣어주더군요. 어떤 손님은 바닥에 묻은 변을 화장지로 손수 닦아주기도 했습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당신의 부인께서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는군요.

뒤처리를 하는 동안 마구 눈물이 흘렀습니다. 예서제서 도와주는 손길이 고맙고, 그런 줄도 모르고 있는 제 아내가 불쌍해서 말입니다. 제 아내는 수영도 잘하고 배드민턴도 매우 잘 쳤습니다. 그래서 배드민턴 동호인들과 함께 친선게임 한다며 외국을 수 없이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던 제 아내가 이런 모습으로 제 도움을 받고 있다니 말입니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손님은 젖은 제 아내의 바지를 보고 의자에 깔고 앉으라고 보고 계시던 주간지를 주시더군요. 그러는 동안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일어나 아내의 손을 잡고 열차 안 손님들에게 죄송했다고 인사를 했지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던 손님들 일부는 안쓰런 모습을 보이시며 '어르신 힘내세요'하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바로 뒤 자리에 앉아서 냄새난다고 얼굴을 찡그리며 손사래를 휘젓던 젊은 아가씨도 "아가씨, 미안했어요" 하고 인사하니까, 미안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아녜요, 아녜요. 할아버지 너무 멋지세요"하며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듯 예서제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고 '힘내세요'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세상 인심이 아무리 각박하다 해도 이곳 신해운대행 새마을 열차 4호차 안에서는 소강사회(小康社會)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아껴주고 배려한다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소강사회(小康社會) 말입니다.

어찌 열차에서 내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눈물은 마구 흐르는데, 아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오기까지 행복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는 나를 생각하니 행복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리고 아내가 곁에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행복 했습니다.

부부란 금슬지락 (琴瑟之樂)이라 하지요. 마치 거문고와 비파 같아서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합주를 만들어 내듯이 아내와 남편이 서로 양보하며 서로를 존중하면 가정이 화목하고 만사가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창부수 (夫唱婦隨)'라는 말. 부부의 화합을 뜻하는 말로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르고, 남편은 아내의 눈동자를 보며 그 내포하는 의미를 알아차려 해결해주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부부 관계가 아닐까요? 그러나 한쪽이 치매걸린 부부라면 금슬지락이나 부창부수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행복은 있겠지요. 남은 인생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며 살아가야하는 짝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행복. 그 행복이야말로 신이 내린 행복이 아닐까요.

생각해 보세요. 자기 짝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분들의 모습을. 제 친구 월정을 비롯하여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여러 분이나 있습니다.

생(生)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은 흐르고 있겠지요. 현재의 이 순간은 누구에게도 다시 오지 않는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아내를 위한 제 애정이 마디마디 연결되어 하루가 이어지듯 저는 제 아내를 위해 순간도 아껴 쓰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언제나 자신감을 보여주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할 때면 품에 꼭 안아줍니다.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화장지며 물 티슈를 구해다 준 여객 전무가 가 고마웠고,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아준 손님들이 고마웠으며, 냄새 난다고 손사래를 젔던 아가씨마저도 '할아버지 멋지세요' 라고 용기를 줄 때 더욱 힘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각박한 세상만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행복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마워요. 여러분이 계시기에 힘을 얻어 제 아내를 잘 돌보겠습니다.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김용복-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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