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앞두고 본가, 즉 '친정'에 온다는 딸은 대전시 중구 대흥동 소재 칼국수집인 '복수분식'을 일찌감치 지적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이따금 대전에 내려올 때면 마치 습관처럼 "아빠, 저 이번에도 얼큰 칼국수 사 주세요!"를 외쳤던 딸이었다.
딸바보의 원조(元祖)에 다름 아니라고 자처하는 나였기에 추석을 이틀 앞둔 날 또한 시간에 맞춰 딸과 사위를 마중 나갔다. 추석답게 대전역 역시 평소완 사뭇 다르게 승객들의 발걸음 역시 종종걸음으로 분주해 보였다.
이윽고 대전역에서 딸 부부를 만나 택시를 타고 대흥동으로 달렸다. 예전엔 소위 '칼국수 타운'으로 소문이 왁자했던 대흥동 칼국수 골목…… 하지만 무심한 세월은 근방에 대규모 아파트가 신설되면서 많은 국숫집들을 이사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칼국수 전문 식당 역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드문한 현상이었다. 한데 이러한 결과의 도출은 칼국수로만 영업을 해선 매출의 극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이른바 상술적(商術的) 판단이 우선한 때문이 아니었을까로 보여졌다.
하여간 이윽고 도착한 '복수분식'. 한가위 명절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명불허전의 칼국수 맛을 보려는 손님들은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앞에 놓여진 바구니에서 번호표를 하나 꺼내 들었다. 우리들 차례는 33번.
마침맞게 밖으로 나온 서빙 아줌마에게 물었다. "우린 언제가 돼야 칼국수를 먹을 수 있대유?" "지금 30번 손님이 들어갔으니께 대충 짐작해 보시면 아시겄쥬?" "......!" 우리 차례는 세 번째였다. "다행이다! 평소 같았으면 열 번은 더 넘게 기다려야 했을 껴."
드디어 식탁에 오른 돼지고기 수육과 얼큰이 칼국수 두 그릇. 불원천리 서울에서까지 달려온 딸 부부로서야 오매불망 그리워했을 '대전의 명물'에 다름 아닌 얼큰이 칼국수 맛을 본다는 건 상식이었다.
그러나 평소 술을 탐하는 나로선 그보다는 술을 마셔주는 게 기본옵션이었기에 소주 두 병에 수육으로만 배를 채웠다. 그러면서도 칼국수를 먹으며 연신 구슬땀을 훔치는 사위에게 물었다. "어때! 맵긴 하지만 맛은 역시 대단하지?"
"네, 정말 맛있네요!" 딸도 화답했다. "정말 맛있어요! 한데 서울엔 이런 맛집이 없어요." 자그마치 인구 천 만이 산다는 수도 서울엔 이런 맛집이 없다? 딸의 말은 금세 '팩트'로 드러났다.
바로 옆에서 두부두루치기에 이어 칼국수를 맛보던 손님 또한 "우리도 이 맛을 보고자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서 왔습니다!"라고 증언한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까지 맛의 중독으로 인한 땀으로 일순 증발시켜 주는 맛집, 다소 진부하긴 하되 실로 매력적인 얼큰 칼국수의 맛을 자랑하는 '복수분식'은 대전광역시 중구 충무로(대흥동)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게 맛난 점심을 먹고 온 이튿날엔 아들과 며느리도 도착했다. 추석이 되면 가장 반가운 건 역시나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이다. 평소 먹고사느라, 또한 각자의 일이 바쁜 까닭에 얼굴 한 번 보기가 임금님의 용안(龍顔) 뵙기보다 어려운 게 요즘의 가족들이지 싶다.
아무튼 올 추석엔 '사상 처음'으로 아들과 며느리에 이어 딸과 사위까지 모두 왔기에 기분이 몹시 낭창낭창했다. 나는 외롭게 자랐기에 가족이 많은 집안이 가장 부럽다. 더욱이 추석과 같은 명절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밥과 술까지 나누는 모습은 어찌나 화수분의 부자(富者)로 보이는지 모른다.
이는 내가 원래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서의 당연한 정서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버님마저 타계하신지도 30년이 넘었다. 어쨌든 이번 추석엔 올 봄에 결혼한 며느리도 처음으로 참석한 차례 상이었기에 선친께서도 예년과는 달리 차린 음식과 술을 더욱 맛나게 드셨으리라 믿는다.
가족 얘기를 하는 김에 기왕이면 다홍치마이듯 자랑을 좀 해야겠다. 나는 아들과 딸은 물론이요 며느리와 사위 또한 말(馬)로 치면 다들 적토마(赤?馬)라고 느끼는 터다. 못생긴 당나귀와 달리 적토마는 중국 삼국 시대에 관우가 탔었다는 말의 이름이다.
또한 이는 매우 빠른 말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하루에 천 리를 달렸다고도 하니 실로 대단한 준마(駿馬)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적토마는 본디 삼국지의 여포가 타던 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조조에게 죽음을 당하자 적토마는 주인을 못 찾았는데 이는 그 말을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다루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조조는 관우의 환심을 살 요량으로 그에게 적토마를 선물로 주었다.
이때 관우는 다른 선물은 모두 거절하였지만 적토마만큼은 고맙게 받았다고 하니 그는 말을 보는 눈이 있었지 싶다. 일설에 따르면 관우가 적토마를 받은 건, 그 유명한 적토마를 자신이 타면 소문이 날 것이라는 예측이 있어서였다고 한다.
이는 또한 그로 말미암아 '도원결의(桃園結義)' 형님인 유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적토마를 타면 유비가 어디에 있든 하루면 달려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적토마가 실로 대단한 명마였다는 것은 관우의 그 엄청난 몸무게와 함께 그가 늘 지니던 청룡언월도라는 '어마무시한' 칼까지 싣고도 그처럼 빨리 달릴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아이들을 적토마에 비유한 것은 다 까닭이 존재하는 때문이다.
두 아이 모두 딱히 사교육을 안 받았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직장에 마치 엿 붙듯 합격했다. 이런 장한 아이들인지라 나는 한 술 더 떠 "너희들은 풍랑을 탓하지 않은 어부"라고까지 칭찬하는 것이다.
올 추석부터는 우리 집에 새로운 가족이 한 명 증가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지난봄에 결혼한 며느리다. 나는 며느리를 '울아가'라고 부른다. 울아가는 '우리 아가'의 준말이다. 또한 '아가'는 시부모가 젊은 며느리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튼 올 추석에 울아가의 방문을 앞두고 아내는 연일 청소하느라 바빴다. 시어머니가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면서. 추석을 나흘이나 앞둔 아침에도 아내는 내 공부방에서 필요 없는 책은 죄 내다버리라고 엄포를 놓았다.
엄처시하의 힘없는 남편인지라 아내의 하명을 좇을 수밖에 없었다. '아, 추석 또한 공짜가 없구나...' 그런데 해마다 추석과 같은 명절이 찾아오면 호칭으로 인한 불편함이 새삼 대두된다.
예컨대 내 남편도 아닌데 시누이 남편을 일컬어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남편의 여동생에겐 '아가씨'라고 불러야 한다. 또한 남편에게 미혼의 남동생이 있다면 이번엔 '도련님'이 된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 신혼부부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호칭'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가급적 얘길 안 하거나 꼭 해야 할 얘기가 있더라도 호칭을 생략하거나 말끝을 흐린다는 것이다.
'며느리'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댁 쪽 사람에겐 '님' 자를 붙이면서 왜 처가 쪽엔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를 테면 남편의 누나는 '형님'이고, 남편의 형은 '아주버님'이며, 남편의 여동생은 아무리 어려도 '아가씨'다.
또한 남편의 남동생은 미혼일 땐 '도련님', 결혼 후엔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반면 처가 쪽은 다르다. 아내의 남동생은 '처남'이고, 아내의 여동생은 '처제'이며, 아내의 언니는 '처형'인 때문이다.
이처럼 시류에도 맞지 않는 '시댁'과 '처가'라는 말도 이제는 시대 흐름에 맞춰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데...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추석에 흔히 겪는 성차별 언어 3건과 남녀가 꼽은 '성차별 행동 톱5'를 엮은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 추석특집>을 지난 9월 16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먼저, 남녀 모두가 명절의 성차별 사례로 꼽은 것은 '명절에 여성만 하게 되는 상차림'이었다. 맞는 말이다. 결혼 전에는 집안에서 금지옥엽으로 고이 자라 손에 물 한 모금 묻히지 않은 딸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집이란 걸 오고 보니 명절만 되면 만만한 게 뭐라고 며느리한테만 일을 시킨다. '아, 이러자고 내가 결혼했던가?!' 라는 푸념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의 불만은 남녀가 따로 상을 차려 식사하는 조선시대적인 '남녀 분리 식사'와, 여성이 배제되는 '제사문화'도 지적되었다고 한다.
이어 위에서 지적한 바 있듯 남성(남편) 쪽 집안만 높여 부르는 '시댁'을 여성(아내) 쪽 집안에도 똑같이 적용하여 '처가'가 아니라 '처댁'으로 호칭하자는 따위 등도 눈길을 끌었다.
우리 속담에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는 게 있다. 이는 선선한 가을볕에는 딸을 쬐이고 살갗이 잘 타고 거칠어지는 봄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는 뜻으로, 시어머니는 며느리보다 제 딸을 더 아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이 속담도 용도 폐기해야 하는 즈음이다. 나와 비슷한 베이비부머 세대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십중팔구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유? 요즘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세상이거늘!"이라며 눈에 불을 켜는 때문이다.
아무튼 올 추석엔 며느리, 아니 새아가에게 내 딸 이상으로 잘 해 주었다고 자평한다. 역지사지로 내 딸이 만약에 시댁에서 명절 내내 부엌데기(부엌일을 맡아서 하는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취급만 당한다면 친정 부모의 속은 어떠하겠는가?
내가 며느리를 딸에 버금가는 '울아가'로 우대하는 이유다. "새아가, 다음 달에 또 올 거면 우리 같이 유림공원으로 국화축제 보러가자꾸나." 이제 모름지기 가을볕은 며느리에게 쬐여야 하는 세상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