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성 남문인 홍화문과 홍주성 수성비. |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홍성은 '목'이라는 중심지였기 때문인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로 자주 떠올랐다. 동학농민운동의 중요 전투 장소이기도 했고 '순례성지'가 될 정도로 곳곳에서 심한 천주교 박해가 자행되기도 했다. 을사조약 직후에는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들고 일어난 지역이기도 하다.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홍주읍성이 있었다.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전투에선 성을 격파하거나 수성하기 위해 싸웠다. 천주교 박해는 읍성 안 공터에서 일어났다.
이처럼 역사의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홍주읍성도 일제의 무자비한 손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읍성은 무너졌고 그 자리를 가로질러 초등학교와 군청을 세웠다. 큰 고을도 허물어지고 성벽 일부만 황량하게 남았다. 흥선대원군이 썼다는 현판들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이것이 내가 어릴때 쭉 봐온 풍경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홍주읍성 복원 작업이 이뤄졌다. 앞으로도 옛 모습을 살리기 위해 군청 등을 이전하고 바꿔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대학 진학으로 홍성을 떠난 지라 몰랐던 바뀐 모습을 보기 위해 혼자 길을 나섰다.
내 여정은 성 '밖'에서 시작했다.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읍성 둘레길을 따라 걸어 남문인 홍화문에 도착했다. 홍화문은 성 복원과 함께 만든 문으로 옛 맛은 없었지만 제법 위풍당당한 멋이 있었다.
남문 앞에 이르자 '홍주성 천년여행길' 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홍성의 천년 역사를 따라 걷는다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남문 위에서는 아담하고 정겨운 홍성 읍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읍성을 따라 걷는 '홍주성 천년여행길' 안내판. |
홍주성 남문인 홍화문. |
대포를 설치하는 성벽 틈으로 내다본 홍성시내. |
홍주성 역사관에서 빌려주는 홍주목사 의상들. |
역사관에서 조선시대 홍주 모형을 관람하는 가족. |
다시 찾은 여하정은 멋진 곳이었다. 규모는 작지만 큰 나무가 드리워진 수상정자는 운치 있었다. 왜 홍주목사가 이곳에서 손님을 맞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하정에 앉으면 술맛이 끝내줄 듯하다.
홍주목사가 휴식을 즐겼던 여하정. |
안회당 창문으로 바라본 여하정 전경. |
조경석 기자 some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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