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 이미지 뱅크 |
그런데 인간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기도 하고, 또 그런 생각이 새로운 것이나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과 그 방법을 알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그냥 걱정과 염려만하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이런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같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는 학생이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명확한 계획이나 방향도 없이 막연히 미래와 장래에 대한 불명확성과 불안으로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우리 학생들이 참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적어도 자신의 전공이나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보다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무엇을 할 것인지 조차를 모르는 또는 인식하지 못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렵습니다. 장래의 진로나 방향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시하고 지도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학생의 적성, 전공, 개인적인 추진력이나 능력 등도 제각기 다르고 심지어 그 학생의 개인적 취향이나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부모님의 바람 등도 그 학생의 선택에 고려할 사항이 되어 어떤 선택이든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미래에 대한 어떤 결정을 하고 방향을 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실천하기는 사실 불가능에 가깝니다. 그 이유는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 사이에 너무나 큰 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는 것'을 모두 '실천'할 수 있다면, 아마도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와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실천이 불가능한 것도 존재하게 됩니다.
특히 삶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규범이나 도덕적인 것들, 그리고 종교적으로 요구되는 필연적인 삶의 방식이나 태도는 누구나가 다 아는 '아는 것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구나가 다 아는 또는 알 수 있는 것들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영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과 '실천 하는 것'에는 큰 간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는 것' 또는 '알아야 하는 것'의 영역을 넓히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바로 '아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비록 이 두 가지의 간격이 넓어서 도저히 좁혀질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 간격을 좁혀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를 좁히고, '아는 것'이 '실천하는 것'을 통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거의 일치하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소위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공적인 삶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삶의 성과 또는 성공을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간격을 좁히고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가기에는 사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때로는 이를 위해서 개인적인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될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것을 양보하고 포기하고 베풀어야 하는 것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나의 것만을 주장하고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베풀지 못한다고 하면, 아마도 이것으로 인해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의 역사를 보면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희생을 했던 경험을 너무나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국가를 위해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면서 너무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그 희생과 고통을 통해 더 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는 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는 아마도 많은 희생과 양보가 필요합니다. '아는 것'을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 다른 것들을 실천할 여유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소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들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에서 비록 이와 같은 현상이 실제로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는 것'을 '실천'하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에는 부단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자신이 간직해 온 많은 것들을 포기도 해야 하고 내어 주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노력이 없이는 '실천'은 불가능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용기와 노력을 가지고 실천을 통해 목표와 방향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바로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추석연휴가 시작됩니다. 추석이라는 명절이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우리 선조들이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아는 것'을 '실천'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행복한 추석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