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준 세종 장기초 교사 |
그렇게 한 명, 한 명에게 적응하기도 벅찰 무렵에 나에게는 업무라는 커다란 짐이 다가왔다. 난생 처음 보는 공문은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 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르는 업무는 교감선생님께, 옆 반 선생님께 여쭈어가며 해결을 하였고 업무에 조금씩 익숙해진 난 많은 공문들을 중요도 순으로 구분했고, 그 후 하나하나 해결해가기 시작했다. 업무에 조금씩 스킬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항상 밤늦게까지 혼자 교실을 지키며 수업연구와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학교생활에 하나씩 적응해가며 일을 해 나가다보니 업무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저 경력교사였던 나에게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한 1학기부터 담임교사를 한 것도 아니기에 아이들의 성격이나 관심사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1학기 담임 선생님에게 익숙해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최대한 아이들이 알고 있는 규칙을 내가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학생들을 파악하고 개별상담을 진행했지만 쉽지 않았다. 학생들을 파악하는데 한 달 이상이 걸렸고, 한 달이 지난 뒤는 이미 9월 말이었다. 아이들과 2학기동안 모든걸 해보려했던 나에게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교사에게 1년이라는 시간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실제 현장은 교생실습 때 배웠던 수업과는 완전히 달랐다. 교생실습 때마다 수업이 너무나 단편적이어서 한계를 느꼈던 나는 좀 더 맥락 있는 수업들을 진행하고 싶었다. 교과서를 재구성하거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만큼 안목이 있지는 않았지만 차시와 차시 사이의 맥락과 흐름을 지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하나하나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성은 너무나 다양했기 때문에 수업을 전체 아이들에게 맞추어서 하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수업연구를 하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6개월을 근무하고 나는 군대를 가야만했다. 조금 더 학생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국방의 의무를 마치러 잠시 교단에서 떠나게 되었다.
항상 힘들고 고단하게만 생각되었던 짧은 학교 생활은 군대에 있는 동안 나에게 큰 추억이 되었고 다시 교단에 돌아가면 아이들을 위한 많은 시간들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제대 후, 다른 학교로 갈 것 같았던 나의 예상과 달리 나는 다시 첫 발령을 받았던 시골학교인 장기초등학교로 오게 되었다.
다른 학교에서 동학년 선생님들과 친목을 다지고 학년 특성에 대해 논하고 수업에 대해 연구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처음에 많은 고생을 했던 학교에 다시 온 것이다. 약간의 두려움이 다시 앞서긴 했지만 학생들을 다시 보니 그런 마음도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저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중학년이 되어있었고 중학년의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어있었으며 내가 가르쳤던 5학년 학생들은 어느새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종종 나를 찾아 우리 학교를 찾아오고 있었다. 학생들이 다시 나를 찾아 온다는 그 기분은 임용에 합격했을 때와 같이 짜릿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장기초등학교에 다시 온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내가 첫 발령 후 짧은 시간으로 인해 이루지 못했던 나의 교육 철학들을 학생들에게 최대한으로 잘 전달해 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그 다짐들을 구체적으로 실현을 하고 있다.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6학년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가르쳐보고 싶었다. 과학실이 너무나 지저분해 보였던 나는 과학 업무를 맡아 과학실 공사를 끝냈다. 여행가기를 좋아했던 나는 체험학습 업무를 맡아 학생들의 체험학습 장소를 정하고 업무를 추진한다.
이제 시작한 아직은 서툰 교직생활이었지만 다사다난 했던 것 같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기대하며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떤 학생들을 만나 지도하며 추억을 쌓을지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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