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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이 여행,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눈치 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여행이라면 특히나 오래전, 외국에서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다는 것은 최대한 멀리,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먼 거리, 긴 시간을 건너 나에게 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원래의 언어를 지금 읽는 단어들 아래 감춘 후에야 마주할 수 있는 책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는 관습들을 상상하고 나에게는 아무런 풍경도, 어떤 구체적인 골목이나 그 안의 사람들도 떠올려지지 않는, 무심하게 쓰인 지명과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 같은 고유명사들을 지나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곳을 혼자 헤매는 여행의 흥분을 느낀다.' -프롤로그에서
고전은 성(城)과 닮았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라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문학적으로 높은 위치에 우뚝 솟아올라 있다.
성답게 벽도 높다. 고전이니까 많이 들어봤거나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읽은 사람만큼 읽지 않은 사람도 많다.
셰익스피어부터 카프카를 지나 하루키까지, 고전의 명장면을 만화로 만나본다면 어떨까. 『퇴근길엔 카프카를』은 웹툰 작가 '의외의사실'이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민음사 블로그에서 연재한 웹툰 「의외의사실의 세계 문학 읽기」를 엮은 책이다. 여기에 2017년 노벨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나를 보내지 마』를 더했다.
작가는 책을 읽는 것을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눈치챌 수 없는 여행'이라 표현한다.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이라는 책 표지의 글처럼, 책은 독자를 어디론가 순식간에 데려가주는 여권이 된다. 책의 줄거리, 대사, 장면들은 여행지에서처럼 날씨, 계절, 음악이 흐르는 순간들과 '느릿하게 보조를 맞춰' 마음속을 거닌다. 정적일 것만 같은 독서는 여행이라는 동적인 행복이 된다.
작가가 고전 속 여행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아 각 작품마다 붙인 이름도 흥미롭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는 '사랑이 시작되는 곳, 의심이 시작되는 곳',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에는 '불안이 내 안에 뿌리를 내려',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는 '젊은 시절을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언어들'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편안한 그림체와 다정한 손글씨는 친구의 독서 일기를 넘겨보는 듯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패스포트툰은 그렇게, 높게만 보이던 고전의 성을 탐험하고픈 욕망을 더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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