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부장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국요리다. 와이프에게 1년 아니, 평생 다른 국은 필요 없고 뭇국만 끓여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하지만 결혼 3650일 동안 뭇국이 식탁 위에 오른 건, 손가락과 발가락 숫자보다도 적었다.
뭇국도 종류가 많지만, 무를 채로 썰어 넣고 마늘과 파, 들깻가루만 들어가는 뭇국이 가장 좋다. 이 뭇국을 처음 맛보게 해준 분은 당연히 어머니다. 어머니께 ‘속이 확 풀리는’ 뭇국 맛의 비결을 물으면 경상도 사투리로 ‘폭 끼리야 된다’고 하신다.
업무적으로 술자리가 많다 보니 출근 전 한 그릇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따라 컨디션이 달라질 만큼, 뭇국은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올해 들어 한 달에 한 번쯤 손주들을 보러 오시는 어머니께선 눈치를 채셨는지, 올 때마다 거의 한 달치에 달하는 뭇국을 끓여놓고 가신다. 다행히 아들과 딸도 그릇에 담긴 뭇국을 들고 마실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데 8월 중순쯤부터 뭇국을 거의 먹지 못했다. 무가 들어간 반찬이나 다른 국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발길이 뜸해진 것도 이유지만, 치솟은 무의 ‘몸값’ 때문이다.
평균 크기의 무 하나가 5000원에 육박했다. 양쪽 꼭지를 자르고 두꺼운 껍질까지 벗겨내 채를 썰어도 개인적으로 세 번 먹기도 부족한 양이다. 장기간의 폭염 등으로 출하량이 줄어든 데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서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9월 들어서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의 기준 뭇값이 개당 3913원에서 3653원으로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평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2000원 가까이 비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의 9월 가격 전망자료를 봐도, 무는 20㎏당 가격이 2만2000원으로, 지난해 1만3950원이나 평년 1만2110원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무를 방출하면서 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었지만, 예년과 비교해선 상당히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뭇값이 비싸면 재배농가의 수익도 올라간다. 통상 소비자 판매가의 55∼60% 정도는 재배농가에 돌아간다. 이를 ‘농가 수취율’이라고 한다.
농가에 돌아가는 수익, 즉 수취율이 낮은 작물일수록 포전거래(밭떼기) 비중이 높다. 무는 평균 80%가 포전거래로 이뤄진다. 가격이 안정되거나, 오르면 무처럼 수취율이 낮은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의 수익도 높아진다.
하지만 가격이 폭락하면 밭을 갈아엎는다. 유통업체가 고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포전거래 계약을 파기하기 때문이다.
판매가의 40%∼45%를 통상 ‘유통마진’으로 보는 유통업체는 가공과 포장, 수송, 쓰레기 처리 등에 이르기까지 대략 3분의 2의 고정 비용을 추가로 부담한다. 다시 말해 고정 비용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판매가격이 폭락하는 만큼 손해도 커져 농산물을 살 수 없어 결국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가격이 올라야 재배농가와 유통업체 모두 돈을 벌게 된다. 뭇값처럼 폭등하면 더더욱 그렇다.
반면 소비자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정부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추석 물가를 잡기 위해 무를 대대적으로 방출해 시중가보다 40∼60% 싸게 공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폭등과 폭락 때마다 정부와 재배농가, 유통업계, 소비자 모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도 어찌 보면 햇볕과 비, 바람의 뜻이다. 복잡한 유통구조라지만, 결국 자연의 손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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