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
올해는 이응노 화백의 도불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1958년 12월 말 예술에 대한 열정을 무기로 가족을 데리고 파리 드골공항에 도착했다. 무일푼으로 그림에 대한 애정만 믿고 떠났던 무모한 도전은 아시아 화가로 국한될 수 있었던 그의 예술세계가 지평을 넓히면서 동서를 아우르는 세계미술사 속의 현대화가로 우뚝 서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당시 그의 도불을 직접적으로 지원한 외국인이 있었는데 바로 동양미술사학자인 주한독일대사관의 헤르츠 대사였다. 특히 그는 이 화백이 독일 대학의 교환교수 자격으로 가족과 함께 1년간 머물면서 4회 초대전을 개최하도록 주선했으며, 작품을 팔아 파리 경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더욱이 유렵의 현대미술에 갈증을 느끼던 이 화백에게 독일의 표현주의 작품은 물론 서양현대미술 전반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파리시립세르뉘시미술관 내 파리동양미술학교 건립 태동도 독일에서 시작된다. 중국인 주린이라는 학자가 파리에 있는 세르뉘시미술관의 블라드미르 엘리세프 관장에게 이응노 화백을 소개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1964년부터 이응노 화백이 동양화를 가르치는 파리동양미술아카데미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1.2차 세계대전 후 비정형미술이 화단을 휩쓸고 있던 파리에 일 년 만에 돌아온 이응노 화백은 이미 독일에서 서구현대미술의 문맥을 어느 정도 소화한 후였다. 그는 1962년 파케티 화랑의 초대전 "콜라주"전으로 파리화단에 새로운 추상화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그 후 문자추상과 군상으로 마침내 2017년 세르뉘시미술관(Musee Cernuschi)과 퐁피두미술관의 초대전을 통해 아시아 출신의 20세기 대표적인 현대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응노 화백의 무모한 도불은 부인인 박인경 화백의 이해와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최초로 미술대학을 졸업한 박인경 화백은 파리에서 한국화를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자연을 소재로 시를 쓰는 작가이며 동시에 이응노 화백의 예술적 동지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온 실천적 예술가이다. 도불당시 독일에서의 부부전을 시작으로 파리 콩파레종, 쌩떼미 수녀원의 개인전, 이후 테사헤롤드 갤러리, 스위스의 뉴마가 갤러리, 최근 한국의 이응노미술관, 가나아트센터, 갤러리 UM 등, 여러 초대전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작품세계를 발표하고 있다.
한편 1950~60년대의 파리는 서양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했던 한국화가에게 가보고 싶은 로망의 도시였다. 당시 파리에 길게 혹은 짧게 체류하였던 권옥연, 김창렬, 김환기, 김흥수, 남관, 방혜자, 이성자, 한묵 화백(가나다순)은 일본을 통해 서양미술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었던 척박한 한국화단에 현대미술의 토대를 세웠으며 현대미술의 선구자로서 길을 개척하였다. 이응노 화백과 박인경 화백처럼 서양미술을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고 싶은 열정 하나로 도불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이다. 도불 화가들의 이러한 도전은 오늘날 우리나라를 문화예술의 강국으로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이응노미술관은 협력미술관으로서 지난 2016년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전으로 개최된 파리 세루누쉬미술관의 "Seoul, Paris, Seoul"전에 참여했다. 이 자리는 파리 한국 화가들의 역사를 프랑스인들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시였다. 특히 1964년에 시작된 세루누쉬미술관의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중심으로 이응노 화백의 화업을 집중 조명했으나, 예술적 동지로서의 한국화가들과 이응노 화백과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집어보기엔 규모의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이번 "파리의 한국화가들"전은 1950-60년대로 기간을 한정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가 전문가는 물론 일반 애호가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파리의 예술 향과 한국인의 정서가 어우러져 피오 올린 예술적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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