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내겐 영화 라라랜드가 왠지 그런 종류의 체험으로 다가왔다. "City Of Stars"라는 노래의 제목처럼 스타들의 도시 할리우드는 거꾸로 내가 사는 도시 한구석의 암전된 영화관 안에 저 먼 곳의 별들을 소환해 펼쳐 보여준다. 쾌적하고 편안한 상태로 즐길 수 있는 히말라야와 고비사막이랄까.
억겁의 시간을 품은 별들은 원초적이고 순수한 에너지를 뿜는다. 여기서 새삼 환기해볼 사실은 별들도 우주만물의 구성요소라는 점이다. 고로 실재하는 현실이다. 한편 평소 우리가 익숙하게 현실이라 믿고 받아들이는 삶의 터전은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가 여름 데이트 코스로 보여주는 대도시의 잘 재단된 관광지와도 같다.
히말라야와 고비사막의 밤하늘은 따지고 보면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 맘먹고 나서면 직접 갈 수도 볼 수도 있다. 과정이 수월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가능하다. 분명 지구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엄존하는 자연이자 가시적 세계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자주 환상으로 여겨진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인 광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비현실적 현실이라고 명명해볼 수 있겠다.
라라랜드는 비현실적 현실의 묘를 잘 살린 영화다. 라라랜드는 뮤지컬영화일까, 뮤지컬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쌓아올린 메타영화일까. 전통적으로 뮤지컬은 관객으로 하여금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감정의 몰입을 유도한다. 반면 예술가소설의 한 지류로서 메타픽션은 이게 허구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둘은 상극의 조합이다.
"지금 나는 쓰고 있다. 지금, 당신은 읽고 있다. 변함없는 현재. 나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이라고 쓰고 있는데, '쓰고 있는데'를 읽는 당신을, '당신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이인성의 메타픽션 <당신에 대해서>의 일부다. 뭔 소린가 싶겠지만,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캐치할 수 있다.
라라랜드는 뮤지컬영화치고 은근히 쇼타임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구석이 있다. 인물들이 쇼비지니스 종사자로서 예술계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해 나누는 현실 고민을 그대로 노출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그러하다. 오디션 시퀀스들에도 계속해서 집중을 방해하는 현실 끼어들기 상황이 발생한다. 영화 속에 영화 촬영 세트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메타픽션의 의도에는 작가의 재귀적 자기성찰 및 자기객관화가 전제되는데, 이것을 일종의 물아일체를 추구하는 뮤지컬과 엮는다는 건 꽤나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시도인 것이다.
아름답지만 씁쓸하다. 동화같으면서 어른의 정서를 담았다. 진부한데 낯설다. 예쁘장한 비현실을 통해 예술가의 현실적 선택과 결과를 보여준다. 뮤지컬의 행복한 환상과 메타픽션의 치열한 자의식 사이에 기거하는 나만의 비현실적 현실, 라라랜드를 발굴하는 지혜가 삶을 풍성하게 해주리라는 믿음이 문득 든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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