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
김수환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주님 곁으로 돌아갔다. 이 말은 그동안 감사 인사에 인색했던 사람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번져나갔으며 장기기증을 비롯해 자원봉사 등을 통해 김 추기경의 나눔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크게 늘어났다. '혜화동 할아버지'로 불리며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이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전해준 메시지는 지금까지 큰 울림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에 대한 끝없는 믿음으로 소외된 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바보 천사' 김수환 추기경은 사후에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법정 스님은 또 어떤가. 자신의 책 <무소유>에 실린 '미리 쓰는 유서'에 자신의 평소 마음을 모두 실었다. "내 그림자만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중략)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중략)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던 그 꼬마 녀석에게 주고 싶다.(중략)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며 흔적 없이 떠났다. 하지만 그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은 말이나 책이 아니라 몸소 실천해온 삶의 행적 때문이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자신의 책을 더 이상 내지 말라는 것이다. 헛된 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에게는 말빚도 별로 없는데 그마저 남기지 않고 모두 거둬 가겠다고 한다. 물론 그 뜻을 정확하게 헤아릴 길은 없다.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글이나 말로 남긴 빚이 얼마나 무서운 짐인지를. 하지만 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말빚을 거두겠다는 의미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멀리 갈 것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말빚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을 쏟아내는 정치인. 무책임하고 편파적인 보도에 무감각해진 언론. 상황에 따라 슬쩍 말을 바꾸는 지식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 한번 식사나 하시죠?" 우리가 가장 흔히 나누는 인사말이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지인과 헤어질 때, 긴 전화통화를 마친 끝머리에도, 하물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마무리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인사치레다. '언제 한번'은 영원히 오지 않을 날이라 하여 말로만 하는 인사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외국인 중에는 이 말을 듣고 일주일 내내 기다렸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이젠 어설픈 말의 성찬부터 자제해야겠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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