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섣부른 말의 잔치는 삼가야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섣부른 말의 잔치는 삼가야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 승인 2018-09-03 14:08
  • 신문게재 2018-09-04 23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이동구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평생 자기가 한 말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주장을 수시로 바꾸거나 또 그 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故 김수환 추기경이나 故 법정 스님은 참 특별한 분들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고 언제나 변함없이 한 길만을 걸었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말씀은 지금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주님 곁으로 돌아갔다. 이 말은 그동안 감사 인사에 인색했던 사람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번져나갔으며 장기기증을 비롯해 자원봉사 등을 통해 김 추기경의 나눔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크게 늘어났다. '혜화동 할아버지'로 불리며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이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전해준 메시지는 지금까지 큰 울림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에 대한 끝없는 믿음으로 소외된 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바보 천사' 김수환 추기경은 사후에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법정 스님은 또 어떤가. 자신의 책 <무소유>에 실린 '미리 쓰는 유서'에 자신의 평소 마음을 모두 실었다. "내 그림자만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중략)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중략)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던 그 꼬마 녀석에게 주고 싶다.(중략)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며 흔적 없이 떠났다. 하지만 그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은 말이나 책이 아니라 몸소 실천해온 삶의 행적 때문이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자신의 책을 더 이상 내지 말라는 것이다. 헛된 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에게는 말빚도 별로 없는데 그마저 남기지 않고 모두 거둬 가겠다고 한다. 물론 그 뜻을 정확하게 헤아릴 길은 없다.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글이나 말로 남긴 빚이 얼마나 무서운 짐인지를. 하지만 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말빚을 거두겠다는 의미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멀리 갈 것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말빚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을 쏟아내는 정치인. 무책임하고 편파적인 보도에 무감각해진 언론. 상황에 따라 슬쩍 말을 바꾸는 지식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 한번 식사나 하시죠?" 우리가 가장 흔히 나누는 인사말이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지인과 헤어질 때, 긴 전화통화를 마친 끝머리에도, 하물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마무리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인사치레다. '언제 한번'은 영원히 오지 않을 날이라 하여 말로만 하는 인사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외국인 중에는 이 말을 듣고 일주일 내내 기다렸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이젠 어설픈 말의 성찬부터 자제해야겠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