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에 안촉(顔?)이란 덕망 높은 선비가 있었는데 벼슬엔 뜻이 없는 사람이다. 하루는 제선왕(齊宣王)이 그의 명성을 높이 사 대화를 나누어 보려고 궁궐로 불렀다. 그러나 안촉은 대궐 계단까지 와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왕이 "안촉, 이리 가까이 오라"하며 말하자 안촉은 "제선왕이시여, 이리 와서 저를 맞으시지요." 하며 대꾸했다.
놀란 신하들이 "무엄하다"며 안촉을 나무랬다. 그러자 안촉은 "제가 왕 앞으로 걸어 나가면 권력에 굽히는 게 되고, 왕께서 제 앞으로 오신다면 예로서 선비를 대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리 오셔서 저를 맞으시지요."라고 답했다.
화가 난 제선왕이 "군주가 귀한가, 아니면 선비가 더 귀한가?"라고 물었다. 안촉은 "당연히 선비가 귀합니다."라며 고사를 들어 설명했다.
"옛날에 진(秦)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할 때 진나라 왕은 덕망 높은 선비 유하계(柳下季)의 묘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무덤에서 50보 이내에 있는 풀잎 하나 건드리는 자가 있으면 참수형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또 제나라 임금의 머리를 베어오는 자에겐 만호후(萬戶侯)의 벼슬을 내린다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임금의 머리가 죽은 선비의 무덤보다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제야 선왕은 안촉의 비범함을 알고 높은 벼슬자리를 약속하며 유혹했지만 안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굶고 있다가 밥을 먹으면 고기를 먹는 것과 같이 맛이 달고, 안전한 길로 걸어 다니면 수레를 타는 것처럼 편할 것이요, 죄를 짓지 않고 지내면 권세나 귀함을 누리는 것과 같고, 청렴하고 바르게 산다면 스스로 즐거울 것입니다(晩食以當肉 安步以當車 無罪以當貴 淸靜貞正以自虞)."
여기서 '청렴한 생활을 한다'는 뜻의 안보당거(安步當車)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남에게 죄 짓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바르게 살면 권세를 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권력에는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악한 권력이 있고, 오로지 백성들만 바라보고 백성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한 선한 권력이 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권력이든, 백성을 위한 권력이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구분하지 않고 독재라고 한다.
대커 캘트너 버클리대 교수는 '선한 권력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서 권력은 얻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촉받은 것인데, 이는 공동체의 최대 선을 증진시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했다. 최고의 권력자가 백성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마음을 알아줄 때 세종대왕이나 박정희 대통령처럼 강력하고 초능력적인 힘이 난다는 것이다.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지 않는 청렴하고 소신 있는 생활 철학을 가진 통치자. 국민들은 그런 통치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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