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회복의 힘은 용서에서 비롯된다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회복의 힘은 용서에서 비롯된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18-08-28 10:31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지난 주말 가까운 공주에서 열리는 정신건강학술문화제에 다녀왔다. 학술 프로그램의 하나인 워크숍의 좌장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정신건강 이슈 중 우리 방의 주제는 여성의 우울이었는데 G교수를 통해 듣는 '중년여성의 우울에 대한 탄생철학적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간호학에 이어 철학과 독문학까지 전공한 특별한 이력을 가진 G교수가 철학 용어나 문구들을 사람들이 어렵게 느낄까봐 신경을 쓰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우울한 한국의 중년여성들은 자기의 삶에 자기가 없는 것 같고 그동안 바보처럼 산 것 같은 상실감에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과 관계도 끊어진 채 과거에 매여 살며 소통의 부재로 고통 받는다. 그래서 삶이 버겁고, 외롭고, 후회스럽고, 원망스러워 죽음도 생각한다고 했다. 중년기를 제 2의 사춘기라고도 말하니 그 불안정이 짐작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은 속이 텅 빈 채 무감각하고 무기력해져서 다른 사람과 소통도 관계도 할 수 없으며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자발성도 잃어버리는 상태이다. 자기 자신에게 침몰해 있는 상태라고도 하겠다. 그러니 여성의 우울은 자녀와의 상호작용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쳐 세대에 걸치는 건강문제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G교수는 유대인이며 독일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을 인용하며 '용서'가 해답의 시작이라고 강조하였다. 용서(容恕)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사람의 과오를 더 이상 책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용서는 자신이 무엇을 행했는지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을 되돌릴 수 없는 곤경에서 벗어나 다시 행위를 시작하게 하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타인을 향해 자기 마음을 변화시켜서 다시 시작하려는 부단한 의지의 표현이 용서라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관점으로 전환하게 하는 능력, 즉 판단력이 더해지면 타인과 함께 하는 세상에서 자기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회복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지쳐서 자기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용서는 새로운 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탄생이다. 하지만 손가락 움직일 힘, 의지조차 없는 우울한 사람이 용서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함께 거들어주어야만 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한 자리에 모여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모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잘 알다시피 어머니 태내에서 나오는 '신체적 탄생', 세 살 무렵의 '심리적 탄생', 학교 갈 즈음 일어나는 '사회적 탄생' 말고도, 이제 우리는 또 다른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하겠다.

흔한 우울의 예로 사람으로 인한 상처에 용서는 상처를 입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기실 용서는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용서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오롯이 상처 입은 사람이 정하는 게 맞다. 누가 용서를 해라 마라 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상처는 그렇게 쉽게 낫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서두르지도 말고 용서하면 될 것을 왜 하지 않느냐고 떠밀지도 말아야 한다. 지켜줄 뿐이다. 김재진이 읊듯 치유의 순간이 그렇게 그 사람에게 들어설 때까지...

한 줄의 편지 쓰고 싶은 날 있듯 / 누군가 용서하고 싶은 날 있다. / 견딜 수 없던 마음 갑자기 풀어지고 /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이 문득 / 이해되어질 때 있다...... 중략 ..... 세파에 부대껴 / 마음 젖지 않는 날 드물고 / 더 이상 물러설 데 없는 벼랑에 서보면 / 용서할 수 없던 사람들이 문득 / 용서하고 싶어질 때 있다. - 김재진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