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필요 없다. 철저하게 계산된 인공지능의 판단력으로 골문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슛, 때론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웃음까지. 10분간 펼쳐진 AI축구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스포츠의 신세계였다.
22일 AI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KAIST. 이미 끝난 2018 러시아월드컵을 연상케 할 만큼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인간이 아닌 AI 축구라는 낯선 기대감 때문일까, 스크린에 쏠린 인간들의 두 눈은 유난히도 반짝였다.
AI 월드컵은 지난해 국내대회에 이어 올해는 국제대회로 처음 열렸다. KAIST 공과대학이 주최했고, 12개국 24개 팀이 참가했다. AI 축구뿐 아니라, AI 해설과 AI 기자까지 인공지능의 국제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무대였다.
AI 축구는 사람의 조작 없이 상대팀 골대에 골을 넣는 Q-Learning을 포함한 AI 기술을 기반으로 축구 전술을 학습한 인공지능이다.
AI 축구의 흡입력은 상당했다.
골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투지는 사람 못지 않았고, 순간적인 스피드와 허를 찌르는 패스, 그리고 골로 이어지는 콤비플레이는 꽤 정교하고 정확했다. ‘진짜 인공지능이 움직이는 거 맞아?’ 라고 되묻고 싶을 만큼 경기는 매끄러웠다.
전·후반 5분씩, 모두 10분의 결승전에서만 10골이 터졌다. 오전 4강과 준결승에서는 무려 39골이 나왔다. 인간이 직접 뛰는 월드컵이라면 이렇게 많은 골맛을 볼 수 있었을까.
물론 똑똑한 AI도 실수는 했다.
100% 성공할 수밖에 없는 단독 드리블 기회. 그러나 계산되지 못한 변수인지, 유연하지 못한 탓인지 인공지능은 골을 넣지 못하고 결국 수차례 기회를 날렸다. 완벽한 AI가 실수할 때마다 관람객들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구글과 미국 MIT, 노스웨스턴 등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대학이 참여했지만, 한국의 실력은 사실상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국내대회를 치르면서 나름 AI 축구에 대한 감을 잡았던 것이 실력의 차이를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였던 셈이다.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차지한 KAIST의 AFC-WISRL팀(리더 김우준)은 “300만 가지 경우의 수를 넣고 학습했다. 지난해의 경험으로 2주간 준비했다”고 말했다.
AI 축구는 미래 과학 꿈나무들에게도 좋은 학습의 장이 됐다.
경기도에서 온 김창하(12), 재하(9) 남매는 오전부터 AI 월드컵을 지켜봤다. ‘몇 년 후에는 AI가 기자를 대신할 수 있다’고 말했던 데니스 홍 로봇 박사의 말이 현실이 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AI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김창하 군은 "AI가 가끔 엉뚱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골을 넣는 모습은 생각보다 통쾌했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김창하 군의 어머니는 "현장에서 경기 진행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다 보니 생생했고, 과학교육 차원에서도 매우 좋은 기회였다"며 “내년에도 열린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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