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전경 |
이번에 확인된 도로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 정상부근 사면과 계곡부를 이어 조성한 것으로 길이는 약 320m다. 노면 폭은 약 5.6m에 달하고, 도로의 표면에는 수레바퀴 자국과 수레를 끌었던 짐승의 발자국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이 도로는 1866년 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목적으로 작성한 지형도에도 소로(小路)로 표시돼 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충북문화재연구단이 작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조사 중이다.
도로 발굴 과정에서는 7세기 신라 토기, 기와부터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백자 등이 나왔다. 도로 외에도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구덩이 유구, 삼국시대 토광묘, 고려 이후의 토광묘와 주거지, 조선 시대 토광묘와 도랑 유구가 발견됐고 고려시대 청자 조각, 조선 시대 백자 조각, 청동 숟가락도 발견됐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옥천은 신라의 관산성이 있던 곳으로, 관산성은 554년 신라가 백제 성왕이 이끄는 3만 군사를 궤멸시킨 곳이다. 이후 백제와 신라가 이 지역에서 치열하게 싸웠고, 660년 백제 통합 전쟁 시에도 신라의 진군로에 자리한 군사 거점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도로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고려할 때 이 도로는 늦어도 7세기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관도(官道)’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671년 기록에 등장하는 보은과 옥천 방면에서 대전을 거쳐 공주에 이르는 신라의 중요 군량 운송로인 ‘웅진도’의 일부로 추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신라의 관도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예는 대부분 서라벌(현재의 경주)과 그 인근으로 서라벌과 지방을 연결하던 관도가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확인된 고대 도로는 왕경이 아닌 지방에서 신라의 관도가 확인된 최초의 예로 주목된다. 또 신라와 백제의 각축지 인 옥천 지역에서 조사된 고대 도로를 통해 신라 왕경과 지방을 연결하는 관도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신라의 도로문화의 전모에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충북문화재연구원은 오는 20일부터 21일까지 현장을 공개한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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