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의 황홀한 춤에 암탉이 사랑의 체위로 응답할 여유나 이유는 이제 사라졌다. 최소한을 먹고 초고속으로 자라도록 개량됐기 때문이다. 육계는 32일(32일령)이면 제품으로서 완성된다. 뼈보다는 최대한 살이다. 전자레인지 크기 케이지에서 닭 네 마리가 얽혀 살아간다. 운 좋아야 세 마리. 한 침낭에 사람 서넛이 구겨져 들어간 셈이다. 12일째(12일령)를 전후해 비싼 모이만 축낸 닭들은 살찌지 못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죽는다. 알 낳기 전문인 산란계는 강제 환우(換羽·털갈이)를 당한다. 알 낳는 속도가 시원찮으면 10~14일 정도 닭을 굶기면 털이 빠진다.
생존의 한계점까지 굶기다가 사료를 주면 산란율이 치솟는다. 고기로 태어나 행복한 고기가 있을까만, 닭에게 로망이 허락된다면 달걀 프라이라는 가정법에 격하게 공감한다. AI(조류 인플루엔자) 파동 때마다 지적되지만, 공장식 사육, 즉 식(食)의 공업화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동물복지 인증제다. 그 덕에 산란계와 육계의 동물복지 인증농장은 130여 군데로 늘었지만 전체로는 달라질 게 없다.
올 여름은 폭염에 서식 밀도까지 높았다. AI 살처분 뒤인 데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특수를 겨냥해 공급을 늘려 육계 산지가격은 ㎏당 950~1150원으로 떨어졌다. 그중에서 힘센 같은 방 '빵장' 닭에게 몸뚱이를 쪼이며 뜯기며 급속하게 체중을 불리느라 닭들도 고역이었을 것이다. 삼계탕 한 그릇 앞에서 칼로리를 간보는 인간의 고민은 정반대다. 뇌를 속이려면 작고 오목한 그릇을 써야 하는 미식물리학적 관점에서도 사실 삼계탕 그릇은 좀 애매하다. 식욕을 돋우는 것도 같고 감퇴시킬 것도 같다.
그런데 평균을 내보면 먹을 만큼은 다 먹는다. 한국인은 연중 '1인 20닭'이다. 연간 닭 소비량 9억3600만 마리 중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 기간에 2억 마리를 잡는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단일 형질화 육종의 부작용을 부추기는 구조다. 일부 동물복지 농장을 중심으로 새 바람도 불고 있다. 닭의 놀이터인 나무 횃대를 설치해 고유 습성을 유지시키려 애쓰지만 강제로 교접하는 수컷은 늘어만 간다. 정자 생산에 특화된 수컷 종계에겐 유혹의 닭춤은 허울이며 사치다. 닭들에 대한 비의도적인 시간과 공간의 허용은 생산비 부담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고귀한 것들은 어려울 뿐 아니라, 드물다.' 이럴 때 적절한 스피노자의 '에티카' 끝 구절을 음미하며 나 또한 흰 잡종닭 백세미(白Semi, 번식용과 산란용 닭을 교배)로 조리한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생각이다. 뼈가 흐늘거리고 구애 춤은 꿈도 못 꾸는 닭들의 동물권을 옹호하자는 이야기로 해석할 필요는 없겠다.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란 닭을 먹을 사람의 권리를 더 강조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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