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부터 가난했다. 그래서 신혼을 반 지하 월세에서 출발했다. 이후 옥탑방에서도 살았는데 여름엔 쪄죽을 듯 더웠다! 반대로 겨울엔 혹한의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었다.
방안의 자리끼(밤에 자다가 마시기 위하여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까지 동태처럼 꽝꽝 어는(凍結) 건 기본옵션이었다. 사상 유례가 없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111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국적으로 40명을 넘어섰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가구 당 전기요금을 한 달 평균 19.5% 줄이는 방식의 한시적 누진제 완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동족방뇨(凍足放尿)의 일시적 땜질이라는 국민적 불만이 여전하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지난 1974년에 오일쇼크로 말미암아 고유가 상황이 이어지자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따라서 올해로 벌써 44년 동안이나 지속돼온 어떤 구습(舊習)인 셈이다. 때문에 44세 이하의 연령층, 특히나 더욱 젊은이들이라고 한다면 영문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전기요금 누진제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누진제가 계속하여 국민적 불만의 임계점으로 부각되는 까닭은 산업용과 일반용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오로지(!) 주택용에만 적용하고 있는 때문이다. 이 때문에 누진제는 줄곧 형평성 논란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와중에 지난 8월 9일자 모 일간지엔 '빈 술병 20개... 박원순 옥탑방 이웃의 쓸쓸한 죽음'이 게재되었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과거 옥탑방에서 고군분투의 여름을 났던 초라했던 삶의 나날이 기억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또한 그 즈음 더위를 먹고 탈진하여 급기야 병원에 실려가 '링거'까지 맞은 후에야 비로소 기운을 차렸던 아픔까지 오버랩 되었다. 링거(Ringer)는 흔히 '링거액'으로도 통용된다.
삼투압, 무기 염류 조성, 수소 이온 농도 따위를 혈청과 같은 수준으로 만든 체액의 대용액을 말한다. 그리고 링거 주사는 링거액을 담아 피부나 정맥에 놓는 주사를 나타낸다. 출혈이나 쇠약, 중독 따위의 증상이 있을 때 혈액이나 수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이 링거는 영국의 의사였던 시드니 링거(Sydney Ringer)가 개발한 수액이다. 영국의 임상의이자 생리학, 그리고 약리학자였던 그는 1863년 런던대학병원의 의사가 되었다. 생리식염 액을 이용해서 개구리의 심장을 관류하면 혈액 대용이 되는 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하여 1882년에 최초의 생리적 염류 용액인 링거액을 고안했다.
그는 각종 염류의 조직, 특히 그것이 심근에 미치는 작용을 조사하여 어떤 종류의 이온이 적당한 비율로 담겨 있는 액은 생활 조직을 활발하게 해 주는 한 혈액의 대용으로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도 사람들은 병(의)원에 입원하게 되면 링거부터 맞는 게 순서이자 상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에 링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괜스레 더욱 아파지는 느낌까지 전이되는 듯 하다.
'빈 술병 20개... 옥탑방 이웃의 쓸쓸한 죽음'을 이어나간다. 보도의 내용처럼 혼자 살던 40대 남자가 고독사를 면치 못했다는 것은 '문제는 현장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까지를 방기한, 찾아가는 복지행정의 부재(不在)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정상인들조차 힘든 폭염의 나날에 '전기료 누진제 폭탄'이라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하거늘 시각장애인에다가 지난 4월부터는 전기료가 미납되어 조만간 전력공급마저 660W 이하로 제한된다는 한전의 통지서(이를 봤을지는 모르겠지만)는 망자를 얼마나 더욱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단초가 되었을까!
말로만 복지국가가 되어선 안 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옥탑방 이웃의 쓸쓸한 죽음'과 같은 절대빈곤층이 우리 주변엔 차고도 넘친다. '옥탑방 엘레지'의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 옥탑방 이웃의 아픔을 주변사람들이나, 아니면 해당 동사무소 등지의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사전에 인지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그래서 병원으로 옮겨 링거부터 맞힌 뒤에 응급처치까지 마쳤더라면 어찌 그리 허무하게 불귀의 객이 되었을까 싶다.
이처럼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있던 차에 혈관에 맞는 링거 대신 마시는 링거의 존재에 관심의 과녁이 옮겨졌다. "링거를 맞지 않고 먹는다고?" 그렇다. 지금까지는 링거를 맞자면 병의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곤 주사를 이용하여 엉덩이 혹은 팔뚝에 꽂고 몇 시간 동안 누워있어야 했다. 이 경우, 병원에 찾아가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함께 주사를 맞는 두려움, 또한 몇 시간 동안 누워있어야 하는 지루함 등이 짜증의 단초로 먼저 다가오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이를 타파한 것이 바로 마시는 링거 혹은 '링거 워터'로도 불리는 링티(Lingtea)라는 것이다. Linger+Tea라는 이름처럼 '물에 타서 마시는 링거'라는 의미이다. 쉽게 마시는 피로회복제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링티는 현직 군의관이 개발한 제품이라고 한다. 특전사 군의관 이원철 대위가 그 주인공이다. 특전사의 경우 훈련의 강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는 건 국민적 상식이다. 그런 만큼 열사병이나 탈진으로 쓰러질 가능성 또한 높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도 링거가 필요한데, 군대라는 환경 특성상 링거를 꽂고 오랜 시간 누워있기 힘들다는 현실적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원철 대위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병사들을 돌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개발한 게 바로 '링티'라고 한다. 일반 링거는 소변으로 배출되어 버릴 수 있지만, 링티는 개발 단계에서 소변 배출로 인한 소실 양을 비롯해 혈장 보충 효과 등까지 꼼꼼히 검증했다. 실제 특전사와 육상 선수를 대상으로 사용성 평가까지 거쳤다.
링티는 주 에너지원인 포도당과 이온음료보다 3배 이상 많은 전해질, 비타민C, 타우린 등 8가지 성분으로 인해 피로 회복과 심폐 지구력 향상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혈관에 맞는 링거를 입으로 직접 마시는 셈인데 따라서 날카로운 주삿바늘에 대한 두려움까지 해결했음은 물론이다. 링티의 섭취 방법은 간단하다. 500ml 물과 섞기만 하면 끝이다. 병원을 찾아가거나 주사를 맞거나, 오랜 시간 동안 누워있을 필요도 없다.
인도네시아 레몬 껍질에서 추출한 향으로 만들기에 미군에서 동일한 제품의 시도가 있었으되 실패한 전력, 즉 맛이 없어도 너무 없는 폐단까지 일거에 해결했다. 이원철 대위의 발상의 전환 아이디어로 말미암아 앞으론 링거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투여(投與)할 수' 있다니 여간 반갑지 않음은 당연지사다.
뭐든 그렇겠지만 사물을 달리 보는 데서 획기적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법이다. 이원철 군의관은 링거를 개발한 공로로 육군참모총장상을 수상하고,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도전! K - 스타트업'에서는 국방부장관상까지 받았다.
링티는 본래 군인을 위해 개발되었다지만 링거가 필요한 건 비단 군인만이 아닌 건 물론이다. 마치 군대에서 정찰용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상업용 택배 수단으로까지 진화한 드론(Drone)처럼 그렇게.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